오피니언 분수대

우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냉전 시대 미국과의 경쟁에서 한때나마 옛 소련이 앞섰던 분야는 우주개발이었다.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소련은 4년 뒤엔 사람이 탑승한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대기권 밖으로 올려보냈다. 우주 공간에다 처음으로 자신의 숨결을 남기고 돌아온 주인공은 소련 공군의 유리 가가린 중위였다. 그는 자신의 육안으로 확인한 사실을 귀환 일성으로 인류에게 전했다. “지구는 푸른 색이다”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우주에 신은 없었다”는 말도 남겼다. 유물론을 신봉하는 소련 군인다웠다. 2년 뒤 우주에 도달한 첫 여성 역시 소련 공군의 발렌티나 테레스코바 소위였다.

미국의 코는 납작해졌다. “보드카 제조와 발레 빼고는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던” 소련에 선수를 빼앗긴 것은 ‘진주만 기습’이래의 충격이었다. 가가린을 탄생시킨 우주개발 책임자는 세르게이 코롤료프 박사였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이름없는 영웅’이었다. 코롤료프가 암살당할 것을 두려워한 소련 당국은 1966년 숨질 때까지 그의 이름을 1급 기밀에 부쳤다.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에게 노벨상을 주겠다는 제의도 물리쳤다.

우주 개발은 이처럼 강대국들이 국운을 걸고 달려든 프로젝트였다. 그 속성상 군사기술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2003년 중국이 세계 세 번째로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것도 오랜 기간 축적한 군사기술 덕분이었다. 민간 경제부문으로의 기술 파급효과 또한 막대하다. 그러니 선진국들은 우주 기술 이전에 극히 인색하다. 이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우주에 있으면 나 자신이 별이 된 듯한 기분”(일본 우주인 노구치 소이치)이란 식의 감상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우주 개발에서 한국은 이만저만 뒤처진 게 아니다. 당장 먹고 사는 지상의 일이 다급한데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주를 꿈꿀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그러다 보니 가가린 이후 47년이 지난 이제서야 첫 우주인을 보낸다. 이미 세계 36개국 470여 명의 우주인이 나온 뒤다. 더구나 지금은 돈만 내고 훈련만 받으면 일반인도 우주관광을 즐길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당찬 여성 이소연씨는 갈채를 받아야 한다. 후발 주자지만 한국은 올가을 새로 지은 고흥의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자력으로 위성을 실은 발사체(로켓)를 쏘아 올려 세계 9번째의 ‘스페이스 클럽(우주 선진국)’ 가입을 노리고 있다. 언젠가는 유인우주선을 개발할 것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우주선에 외국인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소연씨의 8일간의 우주 체험은 언젠가 다가올 우주 강국 한국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D-1, 이씨의 성공 귀환을 기원한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 '대한민국 우주인 1호' 특집 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