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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정지] "촛불 집회 금지" 경찰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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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의 봄은 언제 오나 …
15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울타리 앞에 어느새 물오른 버드나무 꽃망울들이 싱그럽다. 그러고 보니 봄이 분명한 3월 중순이다. 이날도 국회 안팎에선 탄핵안을 둘러싼 정파 간, 세력 간 격돌이 치열했다. 자연의 봄은 왔는데 정치권은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강정현 기자]

경찰이 촛불집회를 수수방관하던 입장을 180도 바꿔 전면 금지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탄핵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지금까지 큰 불상사없이 열렸으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총선을 한달 앞두고 집회가 정치 세력의 선전장으로 바뀌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경찰이 촛불집회를 금지하면서 내세운 것은 집시법이다. 일출 이전, 일몰 이후의 집회.시위는 금지돼 있다는 것이다. 김옥전 경찰청 경비국장은 "합법적 집회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평화적이냐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고 분명히 말했다. 야간집회는 안전사고.폭력.소음.실화(失火) 등의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등에서 열린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집회 주최자에게 소환장을 보낸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주최 단체가 많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점 때문에 현장에서 적극 차단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金국장은 "2002~2003년 여중생 촛불시위는 추모(종교) 행사라 허용됐지만, 탄핵반대 촛불집회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만큼 사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종교.문화.체육.학술 행사는 경찰에 집회신고를 하지 않고도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주최측이 촛불집회 중간에 공연 등을 넣어 문화행사로 포장하고 있으나 통행이 복잡한 도심 도로에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경찰이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원천봉쇄나 강제해산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1만명 넘는 인원이 참가한 심야집회에서 물리력을 사용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로 점거나 폭력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 즉각 강제해산에 나설 명분을 미리 쌓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또 탄핵 정국에서 과격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각종 집회에 대해 '엄중 경고'의 의미도 있다.

경찰은 촛불집회를 당장 막거나 해산하기보다 '관리'하는 쪽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주최 측에 집회 취소를 강력히 요구하되, 집회가 강행될 경우 장소를 최대한 줄여 허용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공산이 높다.

경찰청 관계자는 "야간집회를 강행할 경우 해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노약자도 참석하는 집회를 원칙대로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경찰 입장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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