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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33) 말없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던 에가미가 뜻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을 저으면서 그가 말했다.
『갈 곳도,있을 곳도 없는 몸인가 본데.』 진규가 황급히 말을 더듬었다.
『아,아닙니다.더 이상 폐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그냥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여길 빠져나갈 생각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규를 바라보는 에가미의 눈길이 고요했다.
『당신은 젊구려.그러니 무서울 게 없겠소만 이번에는 내 말을들으시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에가미가 주변을 둘러보듯천천히 눈길을 옮겨갔다.
『여기는 후미진 곳이니… 무슨 일이야 있겠소.사람이라고 해봐야 우리 둘.있을만 할테니 하루라도 더 있다가 가시오.』 『아,아닙니다.』 『이럴 땐 노인말을 듣는 거요.』 에가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진규가 고개를 숙였다.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 인사라도 하고 가겠다고 하지 않았소.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그런데,이제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건가.』 에가미가 잠시 말을 끊었다. 『당신을 구한 이 여자는 그럼 어떻게 된다는 건가.』 고개를 숙인 채 진규는 말이 없었다.에가미가 가쓰요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숨겨줄 수는 없어도,내쫓을 수도 없지 않소.』 에가미가 몸을 일으켰다.
『하루 이틀,도와줍시다.무슨 사람을 해칠 일이야 하겠소.』 진규를 방으로 들어가게 하면서 에가미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말했다. 『가려거든 아무 때나 가면 되네.인사는 안하고 간들 어떻겠나.그냥 몰래 떠나는 게 우리를 위해서도 좋을 거란 생각을안하는 게 아니네.』 『네,고맙습니다.』 가쓰요가 진규의 등에다 대고 물었다.
『우리 마음을 아시겠지요?』 진규가 돌아섰다.절룩이던 다리에힘을 주면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쓰러질 듯 문을 열고 들어서는 진규를 바라보다가 두 노인이 외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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