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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먹거리, 소비자가 심판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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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불량 먹거리에 관한 혐오스러운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생쥐 머리 새우깡’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참치 캔에서 칼날 조각이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어제는 지렁이가 든 단팥빵이 보건당국에 신고됐다.

도대체 우리 주변에 믿을 만한 먹거리가 있기는 한 건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서울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 60%가 식품안전을 걱정하고, 먹거리를 고를 때 인체 유해 여부를 가장 먼저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먹거리 안전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을 바라본다는데 우리네 식탁 사정은 어찌 이리 미개국 수준을 면치 못하는지 서글픈 생각이 들 정도다.

보건 전문가들은 후진국형 먹거리 사고에 대해 ▶허약한 법 제도 ▶천박한 기업윤리 ▶지나치게 관대한 소비자들의 식품안전의식 등 다양한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기업에 있다고 본다. 소비자를 이용할 줄만 알았지 섬길 줄 모르는 우리 기업들의 천민의식을 빼놓고 먹거리 안전대책을 논하기 어렵다.

생쥐 새우깡(농심)과 칼날 참치(동원F&B)를 유통시킨 업체들이 불량 먹거리 사건을 수습하는 행태를 보면 특히 그렇다. 원인을 분석해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금품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는 데에만 힘을 쏟는 느낌이다. 어디 이들 두 회사뿐이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식품업체들의 불량식품 대처 방식은 변한 게 별로 없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식품 범죄는 정말 나쁜 것”이라고 질책하자 식품안전 당국이 어제 부랴부랴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식품 집단 소송제와 부당이득 환수제 등 강력한 규제수단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하지만 기업윤리의식을 제고할 근본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기업들의 상도의를 회복시키는 일은 법과 제도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가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이지만 자율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은 법의 쓴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소비자를 무시해서 물어야 하는 비용이 은폐와 무마를 통해 얻는 이득보다 훨씬 크다는 인식을 기업에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징벌적 배상제를 활용하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평소 식품안전관리를 기업에 일임하지만 소송이나 당국의 불시 점검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보상을 강제한다. 햄버거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면 해당 기업의 총 생산량에 개당 피해보상액을 적용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리는 식이다. 한번 걸리면 끝장이다. 자연히 기업은 소송이 걸리지 않도록 평상시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 편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해식품에 대한 징벌 수위도 낮은 데다 소송이 걸려도 손해 부분에 대해서만 피해를 배상하도록 돼 있어 식품회사들이 소송을 오히려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강제법보다 효과적인 징계수단은 소비자의 힘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악덕기업은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소비자 시장에 형성되어 있다. 일본의 유제품업체 유키지루시(雪印)는 80%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거대 기업이었지만 식중독을 일으키는 등 안전사고가 빈발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먹거리 사고에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시장의 힘이다.

먹거리 안전 수준은 한 국가의 수준이다. 삶의 기본을 외면하면서 선진국 흉내를 내봐야 짝퉁을 면치 못한다. 요즘 대통령의 한마디는 법보다 약발이 있는 것 같다. 수십 년간 박혀 있던 ‘전봇대’도 한순간에 뽑히고, 없던 물가지표도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시스템을 중시하는 민주사회에서 이 같은 행태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식품안전에 대해서만은 대통령의 말발이 먹혀 국민식탁 안전을 보장할 만한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임봉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