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목사님, 고정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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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시카고 트리니티 연합교회를 20여 년간 다녔다. 그곳 주임 목사를 지내다 한 달 전 은퇴한 흑인 목사 제레미아 라이트는 오바마의 정신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오바마의 유명한 저서 『희망의 담대함(The Audacity of Hope)』이란 제목은 라이트의 설교에서 나온 말이다. 오바마가 결혼했을 때 주례를 봤고, 그의 두 딸에게 세례를 준 사람도 라이트다.

그런 그가 “흑인들은 ‘갓 댐 아메리카(God dam America·빌어먹을 미국)’를 외쳐야 한다”고 하는 등 미국을 맹비난하는 설교를 한 것으로 드러나 오바마 진영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13일 ABC 방송에 따르면 라이트는 2003년 “미국 정부는 우리(흑인)에게 마약을 주고, (흑인을 가둘) 더 큰 감옥들을 짓고 있다”며 “그들은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미국에 신의 축복을)’를 노래하라고 하지만 ‘갓 댐 아메리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시민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기 때문에, 미국이 신(神)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갓 댐 아메리카’다”라는 말도 했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당한 직후에 열린 일요일 예배에선 미국이 테러를 초래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 대한 테러를 지원했다. 우리가 해외에서 한 일이 이제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한 것이다.

올 1월엔 오바마를 로마제국과 싸운 예수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힐러리는 결코 검둥이로 불릴 수 없다. 그의 남편 빌 클린턴이 우리(흑인)에게 잘했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러지 않았다. 그는 모니카 르윈스키(클린턴 섹스 스캔들의 여인)에게 더러운 수작을 부린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랬다”고 말했다. 이밖에 “미국은 여전히 KKK단(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의 영향력 아래 있다”거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흑인은 배신자”라는 등의 말도 했다.  

그런 가운데 라이트의 설교 내용이 알려지자 오바마 측은 즉각 무관함을 강조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변인인 빌 버튼은 “오바마는 라이트를 정치적 맥락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라이트가 말하는 것들 중에는 오바마의 견해와 다른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BC방송 등은 “라이트의 언행이 앞으로 오바마에겐 큰 짐이 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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