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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동생 뜨니 형이 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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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모하비가 뜨니 베라크루즈가 지고, 제네시스가 웃으니 오피러스는 운다.”

최근 국내 자동차시장의 구도를 빗댄 말이다. 현대자동차가 해외를 겨냥한 최초의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를 내세우자 기아자동차 오피러스의 판매가 줄었다. 기아가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를 출시하자 지난해 갓 출시한 럭셔리 SUV 베라크루즈의 판매 열기가 눈에 띄게 식는 것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인 현대·기아차는 식구끼리 브랜드 싸움을 벌이는 셈이다. ‘제살 깎아먹기(Carnivalization)’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석 달간 판매수치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12월 현대 베라크루즈는 1608대가 팔렸다. 그러나 올해 초 기아 모하비가 시장에 나오면서 1월(1318대)과 2월(1119대) 내리막길이 뚜렷하다.

현대 제네시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26→434→2809대로 늘어나는 추세가 확연하다. 반면 2006년부터 고급차 시장 1위를 지켜온 기아 오피러스는 최근 석 달 새 1484→1306→1238대로 쪼그라들고 있다. 제네시스는 같은 현대차의 고급차 에쿠스와 그랜저의 판매고를 갉아먹기도 했다. 에쿠스는 지난해 12월 989대에서 지난달 490대로, 그랜저는 7065대에서 5030대로 판매가 급감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어차피 신차효과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 피해를 보는 차종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두 차종이 ‘시장 간섭’ 효과를 보이더라도 결국에는 플러스 알파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 투싼(현대)-스포티지(기아), 아반떼(현대)-쎄라토(기아) 등의 사례가 그러했듯 탄탄한 제품 간의 경쟁이 유사 차종 시장을 좀 더 키울 수 있다는 기대다.

실제 제네시스와 모하비가 출시되면서 상대편 차종들은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오피러스는 일부 옵션을 제외하고 값을 낮춘 오피러스 스페셜로 맞섰다. 베라크루즈는 출고 고객 또는 계약자를 상대로 중동 두바이의 최고급 호텔에서 숙식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상품을 40% 정도 할인한 가격에 내놨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현대차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라운드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스포티하면서 직선적 디자인으로 특화한다는 게 중장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업현장에서는 브랜드 특화전략이 먹힐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업계에선 “자동차회사는 신차의 표적 고객을 분명하게 잡지만, 실제 소비자의 구매행태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한다.

세단을 계약하러 대리점에 들어갔다가 SUV를 타고 나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많은 브랜드는 관리하는 데 큰 비용이 들어 불경기가 닥치면 수익성 급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크라이슬러는 현재 생산 중인 30여 가지 차종을 3∼4년 안에 절반 가까이 줄이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크라이슬러·닷지·지프 세 브랜드별로 별도의 딜러점을 운영하는 것, 미니밴 ‘타운&컨트리’와 닷지 ‘캐러번’ 등 비슷한 차종이 혼재된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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