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드차일드>너무얌전한 지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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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윤어머니,지윤이는 요즘 아이같지 않아요.너무 얌전하고 무슨일이든 지시를 해야만 해요.』 사랑스럽기만한 둘째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은 분명히 칭찬은 아닌 것 같았다.주위에서 지나치게 어려보인다고 했지만 크면 저절로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모든 일상적인 일을 맡아서 해주곤 했다.
선생님은 지윤이가 밥 먹는 것도 너무 느려 식사후의 다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하기야 지난 6년간 밥을 거의 떠 먹이다시피 했으니….
유치원에 다녀온뒤 선생님의 말씀대로 놀이터에 혼자 나가놀기,밥혼자먹기,시장에 같이 가기,심부름하기,신발정리하기,밥상에 수저놓기 등등의 모든 일에 아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보기로 했다.시장에 간 지윤이는 너무도 좋아했다.특히 식탁에 조리돼 올려진 소라와 딱딱한 껍질을 가진채 살아있는 소라는 너무 차이가 났는지 자꾸 이름을 확인하곤 했다.
슈퍼마켓에 처음 심부름을 시키던 날엔 미덥지 않아 몰래 따라가 보았다.지윤이는 조심스럽게 오이를 찾아보다 주인에게 물어보며 오이를 사는 것이었다.오이를 사들고 오는 지윤이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 언제나 어린애 취급하는 엄마를 무안 케 했다.2개만 사오라는 말을 잊고 8개를 사와 한참동안 오이반찬을 먹어야 했지만 오이가 상에 오를때 마다 지윤이는 『엄마 내가 사온오이 맛있지』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스스로 밥먹기는 정말 어려웠다.우선은 한번에 주는 밥양을 줄이고 아이가 밥을 먹을땐 내마음속으로 『참아라,참아라』를 열번이상 반복했다.잘 먹은 날은 다음 식사의 요리때 참여시켜준다는 약속도 했다.
이런 다양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밥 떠먹기」는 쉽사리좋아지지 않았다.생각끝에 도시락에 『지윤아,엄마는 너를 사랑해.맛있게 잘먹고 신나게 놀아라』는 편지를 써넣었다.그날 유치원에 다녀온 지윤이는 『엄마 오늘은 내 뒤로 10 명이나 밥을 먹고 있었다』며 자랑했다.『그래 이정도면 성공이야』라고 자위하면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이영하〈서울서초구잠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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