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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조현석 거대도시 서울의삶 詩속에 그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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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사람들은 자신을 잊기 위해 도시를 만든다.불빛은 어둠을 지우고 고층빌딩은 흙을 가리고 사람은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다.모두들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아무데도 흘러가 닿을 곳 없는 안락한 고립의 공간 도시.
도시적 삶을 주시해온 젊은 두 시인 전윤호(31)씨와 조현석(32)씨가 문학세계사에서 나란히 시집을 냈다.전씨의 『이제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와 조씨의 『불법,…체류자』는 둘다 거대도시 서울에서의 삶을 파고 들면서도 각기 상이한 접근방식을 보여 흥미롭다.
전씨는 삭막한 도시의 단면들을 포착해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로그려낸다.거기엔 복잡한 관념이나 이미지가 동원되지 않는다.생활속의 삽화들이 그냥 시가 된다.마치 신경림의 『농무』를 도시판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아내는 이웃집이 이상하다고 한다/낮에는 항상 대문이 잠겨 있고/인기척이 없다는 것이다/골목 슈퍼아줌마에 의하면/과자 한봉지 사간 일 없는 그 집 가장은/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늦은 밤에야/중고차를 몰고 돌아온다고 했다/…오늘 도 주인집 마루에 모여/이웃집 흉을 본다 아내는/자꾸 이웃집이 무섭다 한다』(이웃) 전씨는 이웃간의 불신을 꼬집기도 하고 아파트 관리소장의 적반하장격 권위주의를 희화화하기도 한다.무엇을 말하든 그는 확신에 차 있다.황폐한 도시적 삶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까.
『길도 없는 산 어디선가 내려와/기관차처럼 철교를 덜컹이며/저기 송구가 온다/머리에 새털이 걸려 있고/작업복 바지엔 노루피가 묻어 있는 태백산맥 어디에나 발자국이/절벽위로 나 있는 사내/…』(송구1) 전씨는 이 시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환기시켜 준다.송구는 도시에 매몰돼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존재를 망각한 삶에 적신호를 보내는 인물이다.
전씨의 마음에는 송구가 산다.그는 강원도 정선에서 성장한 「촌놈」이다.도시를 봐도 「촌놈」의 마음으로 본다.돌아갈 마음의고향이 있으므로 도시적 삶에 자신에 찬 시비를 걸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씨의 시들은 다르다.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시적 삶이 싫다.그렇다고 시골이 그리운 것도 아니다.어떻게 하든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불법체류자의 운명이다.조씨의 시들은 「불법」이 라는 자의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체류자」의 현실사이(…)에 놓여있다.
『벌거벗겨진 몸의 부분부분마저도/섹스심벌로만 치장된 광고가 되어가는,/그런 눈물나는 환락의 유토피아에/발을 딛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충혈 혹은 혈안) 『도무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잠시 잊었었다,사방의 벽이 다가온다/부활을 꿈꾸는 나는 벽속에 누워/화석이 되기를 감히 꿈꾼다』(건축의 힘) 조씨의 불법체류자 의식은 도시적 삶의 양상이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삶의시대적 조건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때문에 그의 시들은 감히 도시적 삶과의 육박전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은밀하게 환락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욕망과 자의식의 신경 전으로 고통받는 인간의내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도시적 삶을 바라보는 두 시인의 방법은 상당한 차이를보인다.건강한 삶을 낙관하는 전씨의 시가 수술을 선택한 외과인턴의 관점이라면 절망적인 현상묘사에 충실한 조씨의 시는 병소문을 내는 노회한 환자의 위치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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