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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now] 샹젤리제, 문화의 거리 맞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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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가 ‘세계 최고의 거리’로 자랑하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당 1000만원 넘는 임대료 때문에 상점들이 거리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미국 레스토랑 ‘플래닛 할리우드’가 문을 닫았다. 플래닛 할리우드 지배인은 “햄버거 하나를 50유로(약 7만원)에 팔아야 본전”이라고 푸념했다. 최근 수개월 사이 문을 닫았거나 폐점이 예정된 가게가 10여 곳에 달한다. 반면 광고효과와 짭짤한 매출 덕분에 옷가게는 속속 들어서고 있다. 문화의 거리가 옷가게 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맥도널드 임대료 176억=1989년 샹젤리제에 문을 연 맥도널드는 미국 패스트푸드 음식점이지만, 샹젤리제의 또 다른 명물이다. 파리시의 규정상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과 빨간색을 간판에 쓰지 못한 최초점이었기 때문이다. 1260㎡ 규모에 직원만 180명이나 되는 이곳이 조만간 문을 닫는다. 건물주가 지난달 ㎡당 임대료를 4000유로(약 560만원)에서 1만 유로로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임대료만 1260만 유로(약 176억4000만원)에 이른다.

올 초에는 이곳에 있던 이란문화원과 대형 약국 링컨이 문을 닫았다. 대형 극장체인인 UGC 트리옹프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인기 나이트클럽 VIP ROOM도 이달에 이사간다.

52년 이곳에 지점을 낸 우체국은 2003년부터 건물주를 상대로 과도한 임대료를 시정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샌드위치·제빵 체인인 폼드 팽 역시 같은 이유로 건물주와 4년 동안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임대료 급등으로 샹젤리제의 오랜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3대째 샹젤리제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장자크 쇼폴리안스키는 “73년에는 샹젤리제 인근에 65개의 영화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35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매출·광고효과 좋은 옷가게만 넘쳐=옷가게와 명품 매장은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입점 자체로 광고효과가 큰 데다 하루 30만 명이 찾는 거리여서 매출도 적지 않아서다. 갭(GAP)·자라(ZARA) 등 의류 매장, 화장품 판매 체인 세포라(SEPHORA) 등이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스웨덴의 H&M 과 미국의 애버크롬비 앤 피치가 입주하려 하고 있다. 나이키·아디다스의 대형 매장과 루이뷔통 본점 역시 최근 2∼3년 들어선 매장이다. 이렇게 되자 파리시가 옷가게 범람을 막기 위해 H&M의 입점을 막고 나섰다. 샹젤리제 관할 지자체인 파리 8구 프랑수아 르벨 시장도 “프랑스의 상징인 샹젤리제에 옷가게만 넘쳐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임대료의 지나친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샹젤리제=파리 한복판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을 잇는 최고 번화가.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 옆에 위치하며 최대 국경일인 혁명기념일(7월 14일)에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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