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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헛장사? … 대기업 속병 깊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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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004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만 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1000원어치를 팔 때마다 209원씩 이익을 남긴 꼴이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팔아 얻은 이익은 2조2000억원. 3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1000원어치를 팔 때 남긴 이익도 94원에 그쳤다. 매출은 해마다 늘었지만 물건을 팔아 얻는 이익은 계속 줄었다는 얘기다. 겉으론 남았지만 속으론 재미를 못 본 셈이다.

삼성전자만 그런 게 아니다. 상장회사 중 시가총액 30위 기업이 비슷했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린 2004년을 고비로 원화 값과 국제 유가·원자재 값이 한꺼번에 뛴 탓이었다. 5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금융 업종을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30대 대기업의 2004~2007년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3년 연속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000원어치를 팔 때 128원의 이익을 남겼지만 이게 해마다 떨어져 지난해엔 83원에 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 황인학 상무는 “매출은 느는데 영업이익률은 떨어진다는 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은 우리 힘으로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은 물론 정부도 기업이 1원이라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이익률 왜 떨어졌나=2003~2004년엔 환율 방어를 했던 정부가 수조원의 손실을 입고 환율에서 손을 떼자 2005년 원화 값이 한꺼번에 뛰었다. 1달러어치를 팔면 1200원 받던 걸 1000원밖에 못 받게 됐다. 수출업체로선 수출품 값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 그만큼 이익이 덜 남을 수밖에 없었다. 2006년까지 이어진 환율 충격에서 벗어날 즈음 이번엔 국제 유가가 폭등했다. 2005~2006년 60달러 선이던 유가가 지난해 100달러에 육박한 것이다. 올 들어선 철강·금속은 물론 곡물 값까지 폭등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리서치센터장은 “원화 및 원자재 값 상승 부담에 외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까지 치열하게 벌이다 보니 이익이 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실적 엇갈려=가장 타격을 입은 업종은 정보기술(IT)이었다. 2004년 효자 노릇을 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가격 경쟁으로 폭락하면서 마진이 급격히 줄었다. 철강과 자동차는 원자재 값 급등의 후폭풍을 톡톡히 맞아야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자동차·조선용 강판이나 송유관용 강관 값도 올랐지만 철광석과 석탄 값 상승분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업계는 단말기 보조금 축소에 따른 고객 확보 경쟁이 이익을 갉아먹었다. KTF가 3G 서비스인 ‘SHOW’로 치고 나오자 SK텔레콤도 광고로 맞불을 놓으면서 광고·마케팅비가 급증했다. 반면 조선업은 중국의 주문이 밀려들면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렸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동량이 는 데다 기름값 급등으로 원유를 실어 나를 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험로 여전할 듯=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신흥시장 덕분에 한국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반등할 걸로 기대했다. 브릭스(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 경제가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 국가가 인프라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면 한국 기업이 수혜를 볼 것이란 예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터지면서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국제 유가와 함께 원자재 값까지 폭등해 기업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만 치솟던 원화 값이 안정되고 있는 게 그나마 호재다. 특히 엔화 강세는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 기업엔 힘이 된다.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여건도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동안 치열한 경쟁을 거친 IT와 자동차는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며 “신기술 개발과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이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민·표재용·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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