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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흔들린다>上.강력한 정치리더십실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는 최근 효고(兵庫)縣 남부지진.도쿄(東京)지하철 독가스사건 등 잇따른 불상사에 대해 『그런 일들이 어째서 내 재임중 일어나는지』라고 코멘트했다.
호의(好意)로 생각하면 국가 지도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말이겠다.그러나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시니컬했다.언론들은 총리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않고 「징징 우는 소리」부터 한다고비꼬았다.
무라야마총리는 JR(일본철도)요코하마(橫濱)驛 악취가스 사건이 나자 『(도쿄 지하철사건 때의)사린가스가 아니라 안심했다』고 말했다가 또 구설수에 올랐다.이같은 총리의 계속된 실수에 국민들의 눈이 고울 리 없다.
연립여당과 정부.일본은행(日本銀行)이 우여곡절 끝에 엔高대책을 내놓았을 때도 일본기업과 국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서로 「면피」에 급급한 당신네들이 내놓은 대책이 무슨 효력을 내겠느냐는 투였다.예상대로 엔高 질주는 멈추지 않았 다.사태가 이런 지경이 되자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라면 나라를 이런 꼴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출연자의 개탄(慨嘆)이 튀어 나오고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의원을 역임한 올해 98세의 老여성 정치가이자여성해방운동의 대원로인 가토 시즈에(加藤しずえ).이 할머니정객은 지금의 일본 지도자들을 싸잡아 『모두 고만고만한 좁쌀 알갱이(小粒)』라고 일갈(一喝)해 화제가 됐다.가토 여사의 말인즉『세계 일류 정치가에 견줄 전후(戰後)일본 지도자는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前총리)정도』라는 것이다.그밖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前총리 정도가 『조금 유능하다』는 평가였고 그외는 모두 「좁 쌀」신세가 됐다.
정치가의 리더십 부재(不在)를 개탄하는 사회분위기와 함께 지금 일본에서는 NHK-TV가 방영하는 대하(大河)역사드라마『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인기를 끌고 있다.욕먹기를 두려워 하지 않고 확고한 비전을 제시,기울어가던 에도 (江戶)막부(幕府)의 재정을 재건한 8대 쇼군(將軍)의 리더십에 관한 얘기다. 일본인들은 현재의 일본이 제3의 국가적인 고비를 맞았다고 느끼고 있다.
근대화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길에 들어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첫 고비였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이 두번째 갈림길이었다.이 두번의 큰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긴 것은 뛰어난 리더십과 유능한 관료조직 덕분이었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관료조직은 여전히유능하지만 개혁의 걸림돌로 비난받고 있다.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관료들을 장악하고 사회를 통합해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지도자,즉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관료는 정치가의 선거구(選擧區)현안이나 정치자금조달,정책수립등을 도와주며 그 대가로 인사나 對의회 교섭때 도움을 받고,기업은 관료-정치가에게 뒷돈을 대는 政.官.業의 유착관계가 자민당 일당체제 붕괴와 함께 혼돈상태로 빠져 들었다 는 얘기다.
자민당체제 붕괴이후의 일본정치의 지도력 공백은 1년에 총리가네번 바뀔 정도로 심각하다.스스로 준비하지 않는 「좁쌀」끼리의정치는 관료가 깔아놓은 레일을 꼭두각시처럼 달리기만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엔高에 대한 근본처방으로 규제완화를 단행하고,정부산하기관의 고질적인 낙하산인사(人事)관행을 혁파하겠다고 나선 행정개혁위원회는 출범 4개월이 지나도록 무엇 하나 내놓은 것이 없다.
보다 못한 경제계가 『국가에 더 이상 기대지 않겠다』(닛케이비즈니스誌 특집기사)고 분통을 터뜨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도자가 깃발 들고 나서면 국민모두가 단결해 뒤를 좇는 일본인의 전통적인 행동방식에 대한 반성도 나오고 있다.『나으리에 의지하기(오카미다노미)는 이제 그만두자』는 외침도 있다.
지난 23일자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인이여 일어나라」는 제목의 논설을 실었다.『죽음을 이웃하고도 의연히 살아가는 알제리人들의 「긴장감」을 지금의 일본인들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경제대국 일본의 이같은 불안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우리에게도 큰 주목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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