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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쟁점과흐름>2.시민사회론 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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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동구 및 소련이 그토록 급속하게 붕괴될 수 있었던 것이 사회주의권의 자율적 시민사회공간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가 서구는 물론,한국 학계의 중심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시민사회란 도덕적 지도력이 형성되고 작동되는 영역으로 법.학교.노동조합.교회 등 정치적 강제와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사회적 영역을 가리킨다.이 시민적 영역은 서구에서는 이미 80년대 데이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 변되는 신보수주의의 등장으로 이론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영국.미국을 포함한 복지국가에서 정부의 과도한 경제개입과 중과세 정책에 대한 중산층의 불만이 확산되면서 등장했던 신보수주의는 시장경제와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의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우리 사회에서는▲87년 대선 이후 민주화운동의 약화▲냉전의 해체로 국가 역할의 축소▲경실련.공선협을 비롯한 환경운동.반핵운동.인권운동.소비자운동.여성운동의 확산이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결과 시민사회는 90년대 들어사회전략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의 지점이 되었다.이것이 본격적인학술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92년 4월 한국사회학회.한국정치학회 공동으로 「한국의 국가와 시민사회」(한울.1992)라는 심포지엄을 열면서부터.이 심포지엄 에서 한완상(韓完相.통신대 총장)교수의 기조발제가 당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韓교수는 87년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 중산층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계층보다 변혁지향적이라고 분석했다.이에 기초해 그는 당시 민중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자처(?)했던 민중당의실패는 바로 그들의 계급적 협소성과 급진적 반대중성에 있었다고지적하면서 시민사회의 중요성과 현실성을 강조했다.
이런 주장이 바로 이론적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그러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韓교수의 주장이 국가 및 이데올로기기구의 억압으로 시민사회가 전혀 발전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서구의 신보수주의를 기계적으로 이식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 는 비판이 나왔다.「자유주의」「다원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국주의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또 민중당의 실패는 계급적 협소성 때문이 아니라그들의 타협적 요소 때문이라고 보았다 .서울대 김세균(정치학과)교수가 그 대표적 인물로,당시 비판적 이론지 『이론』(1992)에 이런 요지의 글을 발표했다.
이런 비판을 염두에 둔 듯 韓교수는 앞서의 기조발표문에서 한국사회에서 국가권력의 강화가 역설적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화시켜,시민사회의 저항능력을 잠재적으로 키워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사회를 둘러싼 이같은 논의는 이데올로기적 입장의 차이만 드러냈을 뿐 쟁점이 모아지거나 생산적인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이후에 이 논쟁은 비판적 지식인 사이의 분열.논쟁으로 확대.
증폭된다.
金蒼浩〈本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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