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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오케스트라 선율을 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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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일로 예정된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으로 한반도에 오케스트라 외교가 펼쳐진다. 뉴욕필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불이행으로 인한 교착 국면을 타결하는 평화의 전령이 될 수 있을까. 북핵 신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한다면, 북한은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그러한 결단을 고려할 단계에 근접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신고 내용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북·시리아 간 핵 커넥션, 플루토늄 총량 및 사용 내역 등 세 가지다. ‘완전한 신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로, 정치적 술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타협의 대상이다. 따라서 양측은 ‘신고 가능한’ 형태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의회와 조야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북한으로서는 ‘고백외교’ 실패의 재판(再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타협안 도출의 시한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연례 발표 시점인 4월 말을 감안하면 3월 초순 정도엔 국무부 차원의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명단 발표 한달 반 전인 3월 중순까지 의회 통보가 완료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의 대상, 방식, 내용도 문제다. 우선 신고 대상은 미국 측 입장을 고려해 세 가지 사안을 모두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고, 북한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 신고 방식은 ‘공개 합의문’과 ‘비공개 문건 또는 비망록’ 등 두 개의 문건을 마련하면 접점이 나올 것이다. 공개 문건은 플루토늄의 총량과 검증에 대한 합의를 담을 수 있다. 플루토늄은 현재와 미래의 명백한 위험 실체여서 신고의 핵심 사안이다. 따라서 북한이 제시한 플루토늄 총량 30㎏ 주장을 받아들이되 검증·사찰의 수용과 방식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UEP와 시리아 커넥션 문제는 비공개 방식을 통해 접근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북한의 자존심을 고려하면서 북한이 갖고 있는 고백외교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공개 문건에 어느 정도의 내용을 담을 것인가가 과제다.

미국은 북측에 수차례에 걸쳐 모범답안을 제시했으나, 북한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기를 거부했다. 여기서 양측의 입장이 적절히 조율될 필요가 있다. UEP의 경우는 미국이 합당한 증거를 제시한 ‘사실’에 대해 북한이 이를 해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시리아와의 커넥션의 경우는 미국이 ‘6자회담 이전의 행위를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는 확약 위에서 최소한의 수준에서 ‘과거 활동’을 해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방안이 기대된다.  

북핵 교착 국면이 타결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악순환 구조 속에 빠지느냐 하는 문제는 오로지 북한의 판단과 결단에 달려 있다. 미국 국무부의 협상파들은 북한의 비협조와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의 비판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처해 있다. 북한은 미국 내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지금의 미국 국무부 팀만큼 북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하는 인사들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북핵 타결을 외교적 성과로 삼으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활용해 더 많은 대가를 챙기겠다고 북한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조야의 다양한 비판을 무릅쓰고도 타협점을 찾으려는 국무부의 ‘스트레스’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시간은 마냥 북한 편이 아니다. 신고 문제에 대한 조율을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뉴욕 필 공연이 ‘예술의 향연’을 넘어 ‘평화의 향연’이 되기를 바란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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