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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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미안해요.민우씨…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가 없었어요.글을 쓰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 작가의 고충을 이해해 주세요.그리고 한 번만 더 저를 만나주세요.
당신에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의 상처가 있어요.당신 이 제 얘기를 들으면 저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당신은 정신과 의사잖아요.』 민우는 가물거리는 의식속에서도 테이프를 확 잡아빼고픈충동이 들었으나 참았다.그래봤자 나만 손해지….미친 여자 같으니라구.정신과 의사가 무슨 창남인 줄 아나.아무나 찾아오면 다만나주게.
민우는 멍하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천장의 하얀 벽지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많이 마시긴 한 것 같았다.민우는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봤다.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렇게 안정을 잡지 못하는 걸까.왜 차분하게 현실을 구축하지 못하고 항상 고통과 모험을 자초하는 걸까.내 속에 무엇이있길래….정말 내가 앓았던 정신병은 언젠가는 반드시 재발하고 마는 불치의 병인가….아내와 주미리가 있었을 때는 그래도 지금같이 방황하지는 않았는데….아마 민우가 그 렇게 여자들을 탐하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여자들에게 의존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민우가 탐하는 여자 수만큼 민우는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채신은 그중에서도 특히 민우가 의지하고 싶었던 여인일지도 모른다.
몇 번 만나진 않았어도 그녀는 민우에게 많은 신뢰와 안정감을 주었으니까….그러나 내 주제에 사랑은….민우의 눈가로 눈물이 번지기 시작했다.아마도 술기운 때문이리라.
서채신! 그녀는 딸이 하나 있는 유부녀라 했다.그러나 그녀의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남편이 너무 꼼꼼하고 의심이 많아 채신을 꼼짝 못하게 묶어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은 그런 남편을 참고 살았지만 더이상 그렇게 살 수 없어 채신 은 지금 남편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그 때 만난 민우는 채신에게는 산소같은 존재라고 했다.채신은 민우를 보기만 하면 고맙다고 말 끝마다 칭찬을 했다.칭찬에 약한 민우로서는 그녀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채신은 키가 크고 착 해보였으며 누가 봐도 눈에 번쩍 뜨이는 이목구비가 정연한 미인이었다.민우는 그동안 여러 여자들을 만났지만 채신만큼 감각과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는 만날 수 없었다.그래서 아마도 만나자마자 그 날로 여관으로 직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우의 품에 안기는 여자들은 대체로 맹한 여자들이 많았다.그래서 육체는 그런대로 어울렸으나 정신적으로는 잘 만날 수 없었다.그래서 민우는 채신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기대하며 그녀에게 은근히 기댔었다.그런데 그녀는 결국 민우를 이용만 한 것이었다.민우는 갑자기외로움과 피로가 함께 엄청나게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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