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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세계는 지금 … 무엇을 먹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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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헝그리 플래닛
피터 멘젤·페이스 달뤼
시오 지음
김승진·홍은택 옮김
윌북, 496쪽, 2만5000원

과학과 환경문제 분야의 보도 사진을 찍어온 35년 경력의 사진 기자 피터. 세계 곳곳에서 취재를 하다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더 뚱뚱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건강에 더 신경 쓸 만한데도 오히려 체중과 의료비가 자꾸 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TV뉴스 PD 출신의 작가 페이스. 그녀는 몇 년 전 뉴기니 아스맛의 오지마을에 취재를 갔다가 생라면을 부숴 먹는 소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오지에서 생라면을, 그러니까 저 먼 나라의 바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즉석 식품을 기본적인 영양섭취도 못하는 아이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두 사람은 “음식과 관련해 뭔가 혁명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인 이들이 자신들에게 던진 화두는 같았다. 바로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였다.

『헝그리 플래닛』은 이 부부가 전 세계를 발로 뛰며 취재한 ‘세계의 밥상 보고서’다. 여행기이며 사진집이다. 일단은 그렇게 보인다. 이들은 5년에 걸쳐 전세계 24개국을 돌며 총 30가족을 만났다. 그냥 만난 게 아니다. 일주일간 그들과 함께 살았다. 시장을 따라가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이 먹는 600끼니의 밥상을 지켜봤다. 그 결과로 256장의 사진을 책에 실었고, 일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 지출하는 총 식비, 조리법까지 공개했다. 덤으로 그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 얘기까지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펼쳐보인다. 우리나라 식탁에 대한 얘기는, 없다.

먼저 호주 리버뷰에 사는 원주민 브라운씨 가족을 보자. 이들은 과거에 외딴 아웃백(오지)에 살 때 숲에서 캥거루를 잡아서 먹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브리즈번 외곽의 작은 마을에 살며 수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그러나 식탁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고기의 양을 보면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도 있는 스테이크로 유명한 체인 레스토랑 이름은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설탕과 크림 등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이들 가족의 다수는 당뇨를 앓고 있다.

주식이 쌀인 부탄의 한 가족은 일주일동안 32kg의 쌀을 소비하고, 그린란드에 사는 사냥꾼 아버지는 바다표범을 잡아 가족을 먹인다.

먼지 바람이 휘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끼니를 때우는 이들도 있다. 차드의 브레지드징 난민촌에서 새벽에 일어나 여섯 식구의 식사를 준비하는 지미야 얘기다. 그녀는 땅 바닥에 세 개의 돌멩이를 삼각형 모양으로 놓고 쭈그리고 앉아 장작불을 피운다. 당밀을 넣고 끓인 물에 말린 토마토 한 줌과, 소금으로 멀건 국과 아이쉬라고 불리는 곡물이 그 가족의 ‘일용할 양식’이다.

처음에 ‘남들은 뭘 먹고 사나’하는 얄팍한 호기심으로 읽어도 좋을 듯싶어 보인다. 흥미로운 사진을 보는 재미로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재미도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들이 집요하게 포착해낸 세계인들의 식탁은 말그대로 ‘밥상’ 너머의 것까지 열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네들 삶의 풍경이고, 역사와 문화다. 그것은 또 정치와 세계 경제와 맞물린 지구촌 현장이다. 우리는 차드 난민촌의 지미야의 고단함에서 수단 내전의 상처를 보고,쿠바 가족의 빠듯한 배급품에서 미국이 부과한 경제 봉쇄의 그늘을 목격한다.

현대 식생활의 거대한 변화 흐름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식탁의 ‘세계화’다. 중국 베이징에 사는 둥씨 가족이 카르푸에서 장을 보고, 멕시코의 카살레스씨 가족은 일주일 동안 20리터가 넘는 콜라를 마신다. 잘 살게 될 수록 글로벌 브랜드의 가공 식품을 많이 소비하는 이들. 곡식으로 채우던 배를 이제 고기로 채우기 시작하면서 기아와 비만 문제가 공존하는 개도국의 모순된 현실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취재과정의 에피소드를 담은 ‘현장 노트’와 각 나라의 개황까지 실려 있어 정보량이 제법 풍부하다. 지구촌 한 구석의 밥상 풍경이 국제적인 이슈로 가슴에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기자의식으로 현장에 접근한 두 저자의 공 덕분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취재 여행이 끝나면 이들은 미 캘리포니아 나파의 자택에서 텃밭을 가꾸며 제철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오키나와 취재에서 얻은 교훈, 즉 ‘배가 80%만큼 부를 때까지만 먹으라’는 교훈을 지키려 노력한단다. ‘과잉의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택한 소박한 대처방식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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