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시인 새시집 "나를찾아 떠난길"펴내며 변신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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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2백4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한 『홀로서기』의 시인 서정윤(徐正潤.38)씨가 새 시집 『나를 찾아 떠난 길』(문학수첩刊)을 내며 변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徐씨는 87년 『홀로서기1』을 펴낸후 『홀로서기2』『홀로서기3』을 계속 내놓으면서 무명시인에서 90년 한국시사상 최고의 대중성을 확보한 시인으로 각광받았다.
『홀로서기』는 외로움.그리움.사랑에의 갈망등 보편적인 정서를평이한 언어로 표현,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으나 평단으로부터는 『자기 감정의 집착에 빠져 현실의 고통을 천착하는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나를 찾아 떠난 길』은 徐씨가 지금까지의안락한(?)시적 관점을 포기하고 더 깊숙한 현실속에 새로운 베이스캠프를 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재는/할 일 다하고 등 돌리는/오래된 영혼/아쉬움 없이 멀리 날릴 때/비로소 나를 찾아/떠날 수 있다면/그 떠남은 살아 있는 길이다』(나를 찾아 떠난길2) 『내 집착하여 찾는 것 버린 후/버릴 수 있는 것 다 버리고/버릴 수있는 것 다 버리고/버릴 수 없는 것마저 버리고 나면/소나무 숲길에 흰 눈이 쌓여/발자국이 보이지 않아도/마음이 가는 길은무심하다』(버린 후) 徐씨는 이번 시집에서 유난히 「버림」과 「떠남」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고통속에서만 꽃은 피어 난다』(노을 스러지는 그 뒤로) 『고독한 사람에게만 계시가 있다』(작은소리)와 같은 대목에서 보여지듯 버리고 떠나는 자가 새롭게 맞이하게 될 희망의 세계를 갈구한다.
삶이 가진 근원적 고통에 대한 통찰과 이 지점에 새로운 삶의뿌리를 내리고 싶은 열망.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성숙함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徐씨의 그같은 열망이 시적 태도로 나타나지 않고 시의소재로 용해돼 이번 시집이 선시(禪詩)풍으로 흐르고 있는 점은경계해야할 경향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문학평론가 박덕규씨는 『선시는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감상성이스스로 지쳤을때 드러내는 노쇠한 모습』이라며 『새로운 면모를 보이고 있는 徐씨의 이번 시집에서 선시적 경향이 보이는 것은 옥에 티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徐씨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버림과 떠남에 대해 많은 생각을갖게 된 것은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유혹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강했기 때문인 것같다』며『어떤 세계인지 아직 모르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 게 되면 선시적 경향은 자연히 없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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