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남미 원자재에 눈 돌리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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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개인소비가 늘면서 중국은 면화·구리·대두의 세계 최대 수입국이 됐다. 또 세계 2위의 석유 수입국이다. 이 모든 자원은 남미가 주요 생산국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부터 중국이 수입하는 대두는 1999년의 3억6000만 달러어치에서 2004년에는 36억 달러어치로 10배 늘었다. 칠레와 페루는 중국이 수입하는 구리의 50%를 대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트리니다드토바고, 에콰도르는 중국에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며 재미를 본다. 니카라과는 커피와 코코아, 차의 주요 수출국이다.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대두,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은 니켈 수출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중국이 수입하는 원자재 중 남미산은 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남미에 직접 원자재 관련 투자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몇 가지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첫째, 원자재 수출 붐의 혜택을 오랫동안 누리려면 투자 관련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남미는 석탄·석유·천연가스 같은 원자재의 생산과 수송을 위한 인프라가 어느 지역보다 취약하다. 하지만 주요 원자재 생산 기업을 국유화하려는 움직임은 남미에 꼭 필요한 외국 자본의 투자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볼리비아 가스전 국유화와 로열티 인상 결정,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콰도르·아르헨티나의 원자재에 대한 국가 통제권을 높이고 민간에서 거둬들이는 로열티를 올리려는 움직임이 이에 해당된다. 중국은 서방에 비교해 이런 국유화의 목표가 덜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역시 투자한 만큼 성과를 노리는 투자자의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 원자재 대가로 지급된 돈이 투명하게 쓰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나 금융기관들이 원자재를 구매할 땐 회계 투명성을 과거보다 강조한다. 중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원자재로 벌어들인 소득이 빈곤 퇴치나 경제개발 등 생산적 부문에 쓰이지 않는다면 국내 분쟁의 소지는 더 늘어나게 된다. 이를 두고 ‘원자재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민간 감사기관의 효과적 감독과 시민단체의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원자재의 저주를 잘 피한 대표적 국가로 칠레와 보츠와나가 꼽힌다.

 셋째, 원자재를 더 많이 생산하려고 할수록 사회와 환경에 커다란 부담을 주게 된다. 따라서 환경영향평가나 오염 방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OECD 소속 원자재 수입국가에는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의무화 돼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로 인해 타격을 가장 크게 입는 사람은 원자재로 먹고살던 빈민층이다.

 마지막으로 남미는 원자재 수출로 인한 이득으로 더 큰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고, 다양화된 경제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중국의 수입업자들은 자국에서 원자재를 가공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남미로선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남미로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또한 빈부 격차가 크고,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남미에선 당장 사회복지에 돈을 쏟아붓는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경제체제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지출을 하려면 상당한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경제 성장이라는 큰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고르그 캐스퍼리 세계은행 라틴아메리카 담당분석관
정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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