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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뿌리찾기에 더 관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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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3월이 오면 중국에서 불어 닥칠 황사가 한류의 미몽 속에 즐거워하고 있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은 재계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며 국민 건강과 환경을 억지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 우익에 의한 교과서 왜곡에 이어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와 정신세계를 압박해 오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시작한 우리의 고대사와 강역(疆域)에 대한 축소.왜곡 작업이 더욱 가속화돼 평양까지 밀려 내려오는 양상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의 전통은 사마천 이래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재생산돼 왔다. 더구나 요즘은 그들의 한약재에서 김치까지 거의 모든 품목이 남북한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중화사상에 기초한 그들의 역사인식은 이미 국경을 인접한 몽골.러시아 등 수많은 국가와 갈등을 빚어오면서도 (추상.구상의)실천적 확장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것은 물론 끝없는 정복전쟁의 역사 속에 북방 이민족에게 지배당한 한족(漢族)의 긴 역사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현 국제정세와 함께 다가올 10년, 20년 후의 한민족의 위상에 대한 예측이 격렬하게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언론.학계가 치열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패권경쟁과 미.중.러.일의 역학관계를 정확히 읽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평화공존을 표방하기 위해서도 즉물적이고 수세적 대응 전략이 수정되고, 광개토대왕이 보여준 바와 같이 오히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고대사 속 민족의 북방영토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역사만이 아니라 한민족에 대한 유전학적.언어학적.고고 민속학적 북방기원설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 이미 언어학자 람스테드는 어족 분류상 한국어를 알타이제어의 분파로 보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 주장은 국어학계에 거의 없다.

멀지 않은 장래에 철로와 원유.가스관에 의해 곧바로 연결될 북방 만주와 시베리아에 대한 실증적이며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곳 북방의 원주민이며 우리와 사촌.육촌 간인 수세기를 멸종의 위기 속에 멸시와 핍박에 허덕이고 있는 고아시아의 후예들-부랴트.에벵키.나나이.축치.에스키모 등 수많은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은 고대 바이칼과 예니세이 문명을 일구고, 인디언과 인디오로 알려진 그들의 일파는 알래스카를 건너 북미와 중남미에 화려한 잉카.마야문명을 꽃피우기까지 했다. 사라져가는 고아시아인의 이들 후예는 이 지역의 자연환경 파괴와 함께 서구문명의 비극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참담한 지금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를 암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분명 북방 샤머니즘의 세례를 받고 태동해 언젠가 돌아갈 대륙을 꿈꾸는 철새를 앉힌 솟대를 마을마다 세우고, 북을 두드려 악귀를 쫓아낸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만주와 시베리아가 결단코 우리 땅이 돼야 한다는 편협한 국수주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단지 그 땅에 살고 있는 근면한 우리 동포들과 함께 지속가능하고 공생적인 번영을 꿈꾸며, 중국과 러시아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 동북아 평화공존을 주도할 명분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정부와 사학계는 중국의 숨은 의도에 대응하는 한편, 민족의 원류가 형성된 만주와 시베리아를 포괄하는 동북아 속의 우리 국사를 정립해 후대에 물려 줄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길주 배재대 교수.바이칼포럼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