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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률산책] 집에서도 총기 갖고 싶은 美보안요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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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12면

우리나라에서도 총기소지를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끔 나온다. 이번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기를 소지하도록 허용할 경우 사회적 역기능이 크고, 비용도 많이 들어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미국에서 개인의 총기(주로 권총)소지를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곧 심리에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워싱턴DC 연방법원 행정사무실 건물의 보안요원인 딕 앤서니 헬러의 제소가 발단이었다. 그는 근무시간에만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권총을 자기방어를 위해 집에서도 소지하고 싶다며 소송을 냈다. 워싱턴DC 시정부는 총기소지를 경찰과 보안군의 공적 권리로 제한적으로 해석해 1976년부터 개인의 총기소지를 금지해 왔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연방항소법원은 무기소지권은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는 것이라며 무기소지를 제한하는 워싱턴DC의 규제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워싱턴DC 시정부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건을 심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의 총기소지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1791년 제2차 수정헌법은 “잘 규율된 민병들은 독립이 보장된 각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하는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39년 연방대법원은 밀러 사건에서 수정헌법상의 권리는 민병과의 관련 영역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거의 70년 만에 개인의 총기소지 권한 문제가 정면으로 다뤄지게 됐다. 제2차 수정헌법은 민병대의 총기소지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총기소지를 규제하는 것이 제2차 수정헌법 위반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 결론은 내년 6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99년 13명의 생명을 앗아간 콜로라도주의 컬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해 올해 4월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등 크고 작은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총기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피해 학생들이 총기를 소지하지 못해 자기를 방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므로 오히려 총기규제를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정당의 입장도 엇갈린다. 공화당은 총기규제를 완화하자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총기규제를 강화하자는 쪽으로 대립하고 있다. 강력한 우익집단인 미국총기협회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최근 핀란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8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유럽의회는 만장일치로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18세 이상만 총기를 구입하거나 소지할 수 있고, 총기 매매자의 이름과 주소, 매매일자, 총기에 관한 모든 자료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도록 강제한 법이다. 새 규정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공식 승인을 거쳐 회원국별로 내년 1월부터 늦어도 2년 내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의 자기보호권과 사회적 이익 보호 사이에서 200년 이상 계속돼 온 개인의 총기소지 논란에 대해 내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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