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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산책] 도시가 문화재 시장도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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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열리는 주말이면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헐크처럼 생긴 남자가 테니스 채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상상만 해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지는 곳이 있다. 생경한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뭔가 새로운 것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곳. 호주 프리맨틀의 벼룩시장이 바로 그런 데다.

글·사진=여행작가 채지형 www.traveldesigner.co.kr

고풍스러운 도시, 아기자기한 시장

 프리맨틀은 호주의 가장 서쪽, 서(西)호주의 주도(州都) 퍼스 바로 밑에 있다. 19세기부터 발달한 작고 아담한 항구도시. 건물의 80% 정도가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사랑도 각별하다. 서호주 사람들은 프리맨틀을 ‘프리오(Freo)’란 애칭으로 즐겨 부른다. 퍼스 사람들은 한여름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프리맨틀 닥터’라고 부른다. 이 시원한 바람 덕분에 여름을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오만큼이나 정감이 듬뿍 묻어나는 이름이다. 빨간색의 트램(전차)과 앙증맞은 스쿠터, 클래식 자동차들이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거리 풍경도 프리맨틀이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프리맨틀의 최고 매력은 벼룩시장이다. 시장 역시 도시만큼이나 자그마하지만, 동화책 속에 들어간 것 같은 재미가 여기저기에서 퐁퐁 터져 나온다.

 시장은 시내 한가운데 있는 ‘189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 클래식한 건물 안에 있다. 항구도시라고 강조라도 하려는 듯, 입구엔 온갖 물고기들이 팔딱거리는 생선가게가 있다. 생선가게 총각의 환한 미소를 받고 한걸음 들어가면 호주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장식품·예술품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호주의 상징’인 부메랑.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손수 부메랑 디자인을 한다는 주인아저씨가 각 문양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앉아 부메랑을 만드는 시범까지 보여준다. 결국 주인아저씨 ‘카리스마’에 반해 지갑을 열고 만다.

 꿀 같은 천연 제품도 많이 눈에 띈다. 호주야 워낙 꿀이 특산이긴 하지만, 서호주는 야생화 꿀로 특히 유명하다. 봄에 피는 1만5000종의 야생화만큼이나 야생화로 만든 꿀도 인기가 높다. 꽃 종류마다 꿀맛이 조금씩 다른데, 너무 종류가 많아 고르기가 만만찮다. 이럴 땐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최고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 혹 가짜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호주는 설탕 값이 꿀 값보다 비싸기 때문에 설탕으로 가짜 꿀을 만드는 일은 없다.

 천연 허브로 만든 화장품과 욕실 제품, 미용 제품도 많다. 가슴에 바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는 아로마, 바르기만 하면 피부가 비단결처럼 매끄러워진다는 크림…. 효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여행자들, 특히 여성들을 들뜨게 만드는 물건들이다. 방부제를 넣지 않는 이곳의 상품들은 소량으로만 포장되는 것이 특징. 브랜드는 없지만 홍보 마케팅비가 들어가지 않아 가격도 꽤 싸다.
 

호주의 상징인 부메랑.

먹어는 봤나, 캥거루 육포

 세계 음식을 싸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프리맨틀 시장의 특징.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덕이다. 대부분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식품들이지만, 쇼핑하다 출출할 때 먹으면 그만한 맛이 없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퍼스나 프리맨틀 시민들도 주말에 이곳 시장을 찾아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한다.

 호주에서 먹거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육포. 호주 사람들도 육포를 좋아한다. 프리맨틀 시장에 가면 다양한 육포를 구경할 수 있는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캥거루 육포다. 맛? 글쎄, 맛은 다른 육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씹을 때마다 귀여운 캥거루가 눈앞을 아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리맨틀 시장은 그 안쪽만큼이나 밖도 흥미진진하다. 장이 열리는 주말이면 거리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공연을 펼친다. 헐크처럼 생긴 남자가 테니스 채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가 하면, 커다란 중절모를 쓴 사람이 동그란 링을 이용해 ‘불 쇼’를 벌이기도 한다. 공연도 즐겁지만 그 공연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있는 공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넋을 놓고 본다.

 시장 안에서 손이, 시장 밖에서 눈이 즐거웠다면 이제는 입이 즐거울 시간. 프리맨틀 시장 앞에는 노천카페로 유명한 ‘카푸치노 스트립’이 있다. 풍부하고 깊은 카푸치노 맛도 좋지만 분위기도 그에 못잖게 그윽하다. 오죽하면 거리 이름에 ‘카푸치노’가 붙었을까. 프리맨틀 시장에서 ‘사냥한’ 호주 기념품 가방을 옆에 두고 잠시 ‘카푸치노 한잔의 여유’를 즐기노라면, 잔잔한 행복감이 커피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사진=유호종]

■여행 정보=한국에서 프리맨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퍼시픽항공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퍼스로 가는 길이 가장 편하다. 비행시간은 11시간 정도. 퍼스에서 프리맨틀까지는 버스로 30분 거리. 우리와는 계절이 반대. 자세한 여행정보는 서호주 관광청 홈페이지(www.westernaustralia.com, 02-6351-5156) 참조.

■쇼핑 노하우

1.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규모보다는 다양한 체험을 즐길 것.

2.프리맨틀 시장은 주말에만 열린다. 퍼스에 도착하면 일정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금요일은 오전 9시~오후 9시, 토요일은 오전 9시~오후 5시, 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5시 문을 연다. 월요일은 공휴일에만 특별히 문을 연다. 오전 10시~오후 5시.

3.꿀을 산다면 포장에 신경 써야 한다. 구입한 곳에 부탁하면 흐르지 않도록 밀봉해 준다.

4.북미산과는 달리 호주·뉴질랜드 육포는 반입이 가능하다. 단, 미리 신고를 하고 정식 검역 절차를 거치는 게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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