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左)씨가 1968년 6월 10일 뉴욕 타운홀에서 연 ‘재판기금 모금 연주회’. 오른쪽은 샬롯 무어만.
나는 백 선생과 함께 세 차례 공연했다. 두 번째는 86년이었다. 내가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는데 백 선생이 위성 쇼 ‘바이바이 키플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나는 뉴욕에서,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은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연주했고, 백 선생은 이러한 모습을 위성으로 연결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세 번째 공연은 2006년. 그의 추모행사에서였다. 서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에서 나는 그해 1월 세상을 떠난 그를 위해 연주했다. 학교 안에 그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나의 무대는 바로 그 분향소였다. 나는 그와 함께 연주하고 있는 듯했다. 묘하고 슬펐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2년 뉴욕에서다. 백 선생의 설치미술전이 열린다고 해 짐을 풀자마자 달려갔는데 휠체어를 탄 그가 나타난 것이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시간 맞춰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그 약속을 못 지켰다. 그때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를 만난 뒤 예술에 대한 나의 상식은 모두 부숴졌다.
나는 그를 ‘백형’이라고 불렀고, 그는 나를 ‘미스터 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스터 황이 부러워. 1500여 년의 전통이 있는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 내가 하는 일은 전통이라고는 없어”라고 말했다.
유머와 재기가 넘치면서도 진지한 예술가 백남준. 나는 그를 처음 만난 충격을 68년 『월간중앙』에 써서 국내에 그의 이름과 예술을 알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 40년이 돼 가고 그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요즘도 내 귀에는 이 기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 아이디어가 빈곤해. 알프스 산속에 들어가 삼국지 좀 읽고 와야겠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 말이다.
황병기<가야금 명인>가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