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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기자현지를가다>下.사할린 韓人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사할린과 중앙아시아는 비행기로 9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곳이지만 서로 사돈을 맺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모든 한인(韓人)들이 결사적으로 한인며느리.사위를 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다.핏줄과 민족의 동질성을 지켜가려는 카레이스키들의 노력은 그만큼 눈물겹다.
그러나 러시아 한인들의 현지 생활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만 가고있다. 남국철(南國鐵.71)씨는 올3월 중앙아시아 우즈베크에서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간 南씨가족은 그러나 한인 특유의 성실성과 끈질긴 생활력으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고 南씨 역시 집단농장 소비조합 물품검열관으로 노동노병훈장까지 받고 84년 은퇴했다.
하지만 소련연방이 붕괴된 뒤 새로운 시련이 찾아왔다.
『57년간 살아온 곳인데 새로운 민족정부가 들어서더니 우즈베크말을 못한다고 마구 박해를 해대 결국 아들 내외와 함께 사돈이 사는 사할린으로 쫓겨왔어요.고국에서 소련으로,다시 중앙아시아에서 이젠 사할린으로 평생을 유랑하고 있어요.』 유주노사할린스크市에서 38㎞ 떨어진 아니와市 근교 해변가에 살고있는 朴순옥(74)할머니는 48년 북한정부가 외화벌이를 위해 사할린지역에 파견한 5천여명의 파견인력중 하나로 온 가족이 이주해와 40여년 이상 조개잡이를 하며 살고있다 .
『고향에 가려고 이것을 꼭 간직하고 있구레.』 외부와의 소식이 단절된 동토의 땅에서 朴할머니는 6.25가 발발했고 이북지역이던 고향이 이젠 남쪽땅이 됐다는 사실도 모른채 너덜너덜 낡아해진 북한여권을 기자에게 내밀며 고향소식을 물었다.
루고워네村.쓰러질듯 낡아빠진 문화주택에서 만난 文달출(75)할머니는 또다른 비극의 상징이었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文할머니는 92년『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며 영구귀국해 자선단체에 몸을 기탁했던 76명의 사할린 노인들중 하나다.
44년 사할린에 와 곧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이국땅에서 억척스레 부대끼며 남매를 키운 文할머니는 자식들이 장성하자 무연고 노인으로 신고해 한국국적을 취득,영구귀국했다.
『따신밥 배불리 먹고 정말 호강이었지.하지만 사위가 크게 다쳐 딸식구가 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혼자 있을수가 있어야지.』 文할머니는 1년여동안 서울등지에서 가정부 등을 하며 2천5백달러를 모아 올 6월 다시 돌아왔지만 이젠 불법체류자가 되어 러시아 공안원들의 눈을 피해 살고 있다.
『고국에 다시 가고 싶지만 나혼잔 못가.딸네 가족이 다 갈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되지도 않을테고 간다해도 뭘해 먹고살겠어.
손녀들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모르는데….』 우리 근대사의 아픈 과거를 웅변하듯 머나먼 동토의 땅에 버려진채 삶의 고단한 뿌리를 내려야 했던 우리 핏줄들.
고국의 방문객들에게 떠듬거리며『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던 한인3세들의 올망졸망한 눈망울이 자꾸만 기자의 눈시울을 흐리게 했다. [유주노사할린스크市=洪炳基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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