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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을] 당신 탈북자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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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몇 년 전의 일입니다. 한 달가량 홀로 배낭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비행기 편이 마땅찮아 홍콩에서 잠시 머물게 됐지요. 그때 20대 중반의 아가씨였던 제게 짝퉁 롤렉스를 파는 호객꾼이 값싼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며 따라붙더군요.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던 지라 못이기는 척 따라갔지요. 이슬람계인 무하마드란 노총각이 주인장인 숙소는 번화가에 있었지만 생각보다 초라했습니다. 숙박계를 쓰고 방에 들어가니 그간의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습니다. 유럽에서 야간열차를 많이 타고 다니다 보니 체력이 거의 바닥났던 거지요. 짐을 풀자마자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누군가가 저를 마구 흔들어 깨우는 겁니다. 겨우 눈을 뜨니 여러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더군요. 그중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여권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더군요. 잠이 확 깨며 겁이 더럭 나 여권을 얼른 내밀었습니다. 무서워서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잡아먹을 듯 서슬 퍼렇던 그 사람들, 여권을 보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을 나가는 겁니다.

 무하마드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하마드는 계면쩍게 웃으며 제가 탈북자인 줄 알고 신고했다고 말하더군요. 19시간을 내내 밥도 먹지 않고 잠만 자 탈북한 뒤 검거될 것이 두려워 그러는 걸로 봤답니다. 숙박계에 분명 국적을 한국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았는데 어쩜 그럴 수 있나 싶었죠.

 미안하게 됐다며 무하마드는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어쨌거나 그날 밤은 즐거웠습니다. 무하마드가 자기 돈으로 홍콩 야경을 구경시켜 주었거든요.  

(김지윤· 31·강원도 태백시)

내년 1월 4일자 주제는 운전 에피소드

■11·12월 장원작으로 12월7일자에 실린 이선자씨의‘들통난 애정행각’을 선정했습니다.(재세공과금은 본인 부담입니다)

■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2월 31일까지weekend@joongang.co.kr로 보내 주십시오. 채택된 분께는 원고료를 드리며, 두 달마다 장원작 한 편을 뽑아 현대카드 프리비아에서 제공하는 상하이 왕복 항공권 및 호텔 2박 숙박권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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