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불협화음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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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다 맞지 않는 반쪽을 만나서지요, 뭐.”

일러스트=강일구

필자는 성기능장애 환자들이 자기 배우자를 맹렬히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서글퍼진다. 발기부전 남성은 아내가 성적 매력도 없고 제대로 자극을 해주지 않아서 발기가 안 된다고 불평하고, 불감증이 있는 여성들은 남편의 능력 부족이라고 비난한다. 다른 상대와는 문제가 없는데 유독 아내 앞에서만 발기가 안 되니 전적으로 아내 탓이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상황성’ 성기능장애일 뿐이다. 특정 상황, 특정 상대에 대해서만 성행위가 불가능하다면 이는 신체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다. 당사자의 성행위 불안이나 부부의 불협화음 때문에 성적으로 흥분이 안 돼 발기부전이나 불감증을 겪게 되는데, 그저 상대 탓만 하는 것이다.

성불구자라고 비난받는 남성도 알고 보면 아내의 성격장애나 부부갈등 때문에 부부생활의 재미를 잃고 섹스리스로 빠진 경우가 꽤 있다. 부부의 성문제는 이런 부분을 두루 살펴봐야 하는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불평만 듣다 보면 치료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성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부부가 함께 적절한 리듬을 갖고 노력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놀이가 바로 성생활이다. 불협화음에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멀쩡한 신체기능을 가지고서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부부라는 배에 물이 새는데 구멍 난 곳을 함께 찾기는커녕 네 탓, 내 탓만 하고 있으면 그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미국 킨제이 연구소에서 연수하던 시절, 갑자기 남편이 발기부전에 빠진 미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내는 발기부전이란 진단을 듣자마자 남편이 앞에 있는데도 대성통곡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아내가 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닌지, 또 아내가 우는 것을 본 남편의 심적 부담이 더욱 커지지나 않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의료진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그 부부는 늘 함께 치료를 받으러 왔다. 아내는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나섰고, 남편은 아내가 여전히 자신을 지지한다는 점에 늘 감사했다. 그들의 치료 성과는 다른 어떤 환자들보다 우수했다. 의료진의 칭찬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발기부전 때문에 남편이 얼마나 속상할지 마음 아팠어요. 우리에겐 사랑이 있으니 고쳐질 거라 믿었죠.”

한국에서는 자신의 성기능 문제를 배우자에게 알리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배우자 몰래 치료를 받겠다는 환자들이 많다. 물론 혼자 치료받고 안정되는 경우가 당장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에게 문제를 툭 터놓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치료에 훨씬 도움이 된다.

부부간에 성 트러블이 있을 때 서로 탓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우리’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든, 경제적 위기든, 집을 옮기고 새 가구를 들여놓을 때도 부부라면 함께 상의하는 것이 옳다. 성 문제도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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