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증권업 구조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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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증권업계가 산업은행을 주목하고 있다. 대우증권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산은이 LG투자증권에 대한 매각을 주간하게 되면서다. 증권업계에서는 산은이 두 증권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증권업계 판도가 확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은 LG카드 처리 과정에서 채권단이 LG카드에 출자키로 한 3조6천5백억원 가운데 7천7백억원(21%)을 부담키로 했고, LG그룹이 LG카드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LG증권 지분 매각까지 맡게 됐다.

산은은 현재 채권단 일정대로 5월 말까지 LG증권을 매각하기 위해 실사작업에 돌입해 있다. LG증권의 운명은 일차적으로 산은의 손에 있는 셈이다. 산은 관계자는 "매각은 상대가 있는 만큼 5월 말을 목표로 하되 시한에 너무 얽매이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자회사인 대우증권의 경영에도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시장점유율과 수익률 제고 등 경영 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어 놓고 이행 여부를 따질 뿐이다. 외환위기 전 산업증권을 자회사로 두고 증권업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뼈아픈 기억도 이 같은 '느슨한 관리'의 한 이유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주식위탁 규모로 따진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대우증권이 약 6.8%, LG증권이 8% 수준이다.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단순 합산하면 업계 1위인 삼성증권(약 9.2%)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결국 산은이 두 회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산은이 마냥 대우증권을 자회사로 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대우증권이나 LG증권은 좋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산은이 빨리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LG증권 관계자는 "매각 작업이 지연되면 증권사의 경쟁력인 우수 인력이 떠나면서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외국계에도 매각 문호를 열고 매각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의 취임으로 산은이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李부총리의 한 측근은 "李 부총리의 성격상 공적자금을 넣지 않아도 되는 금융권 구조조정을 휘몰아칠 개연성이 크다"며 "증권업계가 우선 순위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권성철 사장은 "매각을 추진한다면 두 회사의 장부가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며 "두 회사의 구조조정이 증권업계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부는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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