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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서브프라임 해소에 1~2년 … 경기침체 감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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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만난 사람=김정수 경제 전문기자

 미국 프린스턴대의 진 그로스먼(사진) 교수는 국제무역과 동태적 경제성장, 환경이론의 석학이다. ‘경제발전이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환경오염이 줄어든다’는, 그 유명한 환경- 쿠츠네츠 곡선을 실증한 인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 이하에선 경제성장이 환경오염을 악화시키지만 소득이 5000달러를 넘으면 평균적인 환경지표가 개선되는 사실을 입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웃돌면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환경오염은 감소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분석 덕분에 미 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큰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반대론을 제압하고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했다. 서울대의 ‘우수 석학 초빙 지원 프로그램’으로 방한한 그로스먼 교수를 8일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실에서 본지 김정수 경제전문기자가 만났다.

- 김정수 전문기자=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서브프라임 모지기(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둘러싼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상당 기간 세계경제를 괴롭힐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그로스먼 교수=서브프라임 문제는 기본적으로 지난 수년의 과잉금융에서 발생한 것이다. 과잉금융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서브프라임 문제가 해소되는 데는 1~2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금융 규모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경기침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 김=당신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가깝다고 알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서브프라임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기나 환율 등이 요동칠 가능성은 없겠는가.

 ▶그로스먼=버냉키 의장은 예전에 프린스턴대 교수를 하면서 20년 동안 바로 내 옆 연구실에 있었다. 그는 아마도 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금리인하 등 조치를 취하는 동안에는 달러가 약세 기조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 이맘때면 언제 그랬나 싶게 상황이 호전되어 있을지 않을까 싶다.

 - 김=한국에선 어렵사리 타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대선 등 정치일정 때문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미국에선 어떤가. 미국 국회·경제단체·노조 관계를 감안할 때 한·미 FTA의 비준이 순조로울 것으로 보는가.

 ▶그로스먼=한·미 FTA의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개방적인 무역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또 FTA 등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상당수 대통령 후보가 이런 분위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어 걱정스럽다.

- 김=미국 내의 FTA 반대론자들은 FTA 상대국들이 환경보호와 근로기준을 지키지 않는 점을 두고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상당히 높은 환경·근로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스먼=반대론자들은 근로기준이든 환경이든 특정한 사안 때문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다. 단지 FTA로 미국시장이 더 개방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우려가 있고 그래서 미국시장과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 김=그러면 자유무역 자체에 반대한다는 얘기인데, 세계무역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왜 그런 생각을 가질까.

 ▶그로스먼=자유무역을 통한 글로벌화가 경제·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봐서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 근로자,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 간의 격차 등이 다 글로벌화 때문에 심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양극화 심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옳지 않다. 문제는 무역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룹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김=최근 미국에서 보듯이 개도국과의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웃소싱(미국 등 선진국 회사가 정보처리 등 사내에 필요한 작업이나 공정을 중국이나 인도 등 개도국에 맡기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로스먼=아웃소싱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의견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실증분석을 해 보면 아웃소싱이 오히려 국제경쟁력 상실의 위험이 있는 산업이나 기업으로 하여금 국제경쟁력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 김=아웃소싱을 하면 국내의 저급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인하 압박이 생기고, 또 심하게는 산업공동화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로스먼=회사 내에서 필요한 작업과 공정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경쟁력이 있는 공정과 경쟁력을 잃은 공정 모두를 국내의 한 회사 내에서 다 하게 되면 산업이나 기업이 전체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국내 회사는 그중 경쟁력 있는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 경쟁력을 상실한 부분을 아웃소싱하면 전체적으로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얘기다.

 - 김=아웃소싱 이후에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근로자는 좋겠지만 아웃소싱으로 자신의 일감을 잃는 근로자의 입장에선 국제경쟁력 강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로스먼=그렇지 않다. 경쟁력을 잃은 작업을 하던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아웃소싱은 개인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과거에 하던 작업과 기능만이 그 근로자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아웃소싱이 저임금 단순노동의 일자리를 뺏는 역기능을 넘어 아웃소싱으로 인해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어 근로자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아웃소싱에 힘입어 1997~2004년 단순 근로자의 생산성이 매년 0.25%씩 증가했다.

- 김=요즘 한국에는 ‘샌드위치’론 때문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발전단계나 기술수준에서 한 수 위인 일본과 저비용을 앞세운 중국에 끼인 신세다.

 ▶그로스먼=세계 어느 국가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몇 달 전 스페인에 갔더니 유럽 선진국과 아시아 중진국 사이에 끼였다며 걱정하고 있더라. 하다 못해 80년대에는 미국도 같은 걱정을 했다. 일본이 기술적으로 미국을 앞서 가기 시작하고 저임·저비용의 개도국들이 밑에서 치고 올라와 미국이 그 사이에 끼여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샌드위치론 같은 우려는 국제무역을 제로섬 게임(한 나라에 유리하면 다른 나라에는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

 - 김=그래도 한국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샌드위치 코리아에서 벗어나는 데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그로스먼=어떤 나라든 모든 산업에서 잘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샌드위치 우려는 모든 것을 국내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각국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자기만 생산해 팔 수 있는 틈새시장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샌드위치 입장에 놓인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그만큼 국가도, 산업도, 회사도, 또 개인도 각자의 경쟁력 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그 핵심 역량, 틈새시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김=서울대가 당신을 초빙한 데는 당신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점도 작용하고 있다.(※서울대 우수 석학 프로그램은 국내 학자들의 연구 수준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노벨상을 받았거나 수상할 가능성이 큰 학자들을 초빙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로스먼=(손사래를 치며) 후보로 언급되면서 공연히 나오는 얘기들이다. 그동안 나의 연구는 ‘내생적’ 혁신과 성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솔로 교수 등 전통적인 성장론은 혁신이나 성장이 외부 요인에 의해 촉발되지만 그 외부 요인에 의한 성장효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어 장기적으로는 성장이 제약된다고 보았다. 반면 나는 기술혁신과 투자 등 성장 요인들이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그래서 혁신과 투자, 그리고 성장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다는 차이가 있다.

 - 김=마지막으로 당신의 이론 가운데 어떤 점을 주목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은가.

 ▶그로스먼=글쎄…. 나의 연구 초점이라면 혁신과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내부적 요인과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연구 결과 중 현실적인 것 하나가 ‘성장요인을 내생화’한다는 점이다. 즉 생산시설이나 기계 등에 대한 물적 투자보다 교육이나 지식을 비롯한 인적 투자가 훨씬 수익률이 높고 오래 유지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그로스먼 교수는 …

국제무역·성장이론 대가
버냉키 의장 20년 친구

진 그로스먼(Gene M Grossman·52)은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경제학부의 석좌교수다. 예일대를 거쳐 MIT 박사과정을 3년 만에 수료했다. 1980년부터 프린스턴대에서 교수로 재직해 왔다. 같은 대학 교수로 근무한 벤 버냉키 미 FRB 의장과는 가까운 사이다. 국제무역 이론을 구축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연구집약적인 첨단기술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을 집중 분석해 왔다.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수직적 분업체계에 대한 새로운 성장이론의 골격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발전과 환경 간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도 손꼽히는 연구 성과다. 최근 로시- 한스버그 교수와 공동집필한 『새로운 경제지리학(The New Economic Geography)』이란 보고서를 통해 국제적 아웃소싱이 당초 우려와 달리 단순직종의 실질임금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저서로는 『글로벌 경제 하에서의 이노베이션과 성장(Innovation and Growth in the Global Economy)』(공저·사진),『특수 이익집단의 정치』 『이익집단과 무역정책』 등이 있다.

정리=김희영 경제연구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