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운영 … 관청서 신경 안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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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일 오후 5시15분 일본의 중앙정부 관청들이 몰려 있는 가스미가세키 중심부에 자리 잡은 외무성 본관 3층 381호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사무차관이 들어서자 기자들이 순식간에 자리를 메웠다. 매주 월~금 날짜별로 정해진 시간대에 어김없이 기자회견(한국의 브리핑에 해당)이 이뤄지기 때문에 미리 와 기다릴 필요 없이 브리핑 당사자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야치 차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는 게 없었다. 대부분의 보도자료는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려놓기 때문에 브리핑 시간에는 질의응답 중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브리핑 내용은 알차고 심층적이었다. 예의상 면피성으로 둘러대는 '다테마에(建前.겉치레 말)'로 생각되는 답변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이 이슈에 제한 없이 집요하게 질문해도 국가기밀을 누설할 정도의 선을 넘지 않는 한 공무원은 기자들에게 성실하게 답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신문의 심층 해설 기사 등에서 '정부는 말 못할 사연 때문에 국민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견제를 받는다.

일본 국민은 이런 언론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들의 질문은 광범위했다.

지지.교도 통신, 아사히.요미우리 신문 등 낯익은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질문에 나섰다.

"최근 고위 경제회담을 비롯한 일련의 일.중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당초 6자회담이 이번 주 예정돼 있었는데 현재 상황에서 가능하겠나." "북한핵 무능력화는 예정대로 실시될 것으로 보고 있나."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할 가능성이 있다는데 일본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전방위적으로 날아들었지만 야치 사무차관은 흐트러짐이나 짜증 없이 성실하게 답변했다. 기자들이 개별적인 관심 이슈에 대해 얼마든지 심층적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이렇게 속시원하게 질의응답이 오간 뒤 브리핑은 20분 만에 끝났다. 공무원이 특정한 주제에 한정해 수십 쪽에 이르는 자료를 일방적으로 '낭독'한 뒤 보충질문만 해야 하는 한국식 겉치레 브리핑과는 달랐다.

브리핑룸에서 5m가량 떨어진 기자클럽(한국의 기자실에 해당)에 들어가 봤다. 일본의 주요 언론사인 닛케이신문 부스에 들어가자 기자 두 명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정치 담당 나가사와 쓰요시(永澤毅) 기자에게 기자실 운영에 대해 물어보자 "한국의 기자실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국의 외교통상부에서는 바닥에서 기사를 쓰고, 경찰청 기자실에서는 촛불을 켜고 기사를 쓰는 지경에 이른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 언론계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외무성 공보관실 관계자에게 기자실과 마찰이 있는지 물어보자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관청에서는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기자협회 관계자는 "기자실을 폐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경시청은 물론 공무원이 있는 관청에는 모두 기자실이 운영되고 있다"며 "행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글=김동호 특파원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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