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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공장 돌릴수록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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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도 안산 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S사의 사장과 임원들은 요즘 초긴장 상태다. 조만간 치러야 하는 '전쟁'때문이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연초에는 연례 행사처럼 대기업으로부터 "생산성이 높아졌을 테니 단가를 몇% 낮추자"는 전화나 팩스를 받았지만 올해는 반대로 이쪽에서 "납품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쥐가 고양이를 물어야 하는'상황인 것이다.

'납품업체를 바꾼다고 나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원자재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자동차의 트랜스미션에 들어가는 각종 기어와 엔진의 커넥팅 로드 등 금속 부품을 만든다. 주로 탄소강을 원자재로 사용한다.

그런데 지난해 봄 ㎏당 5백5원이던 것이 지금은 6백55원 한다. 무려 30% 오른 것이다. 현재 0.5%에도 못 미치는 마진율을 고려하면 지금의 납품가격을 유지해선 적자를 보면서 생산해야 한다.

이 회사는 자동차 업체에 "소재비 인상분만큼만 올려달라"고 요구해 볼 셈이다. 납품할 업체들의 담당 사원부터 임원에까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있다. 사장이 직접 나서 각종 통계 서류와 계산기를 들고 설득시킬 계획이다.

1백여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는 이 회사의 이모 이사는 "외환위기를 겨우 넘기고 좀 살만해지나 했더니 이젠 원자재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선박에 올려지는 선실 등을 제작하는 ㈜신한기계 이동호 경영본부장은 "조선업이 최대의 호황이라지만 남의 일 같다"고 말했다.

납품 업체 입장에서는 일감이 있는 것일 뿐 수익성은 없다는 얘기다. 역시 원자재인 철판 값이 올라서다. 그는 "올해도 대기업은 납품가를 깎으려 할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형편을 알려주고 (도와달라고)매달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원자재를 중국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발생한 원자재값 폭등으로 제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자재값은 폭등했는 데도 대기업에 납품하는 가격이나 소비자 가격은 쉽게 올릴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 더 많은 애를 태우고 있다.

또 이 틈을 타 일부 중간 유통상들의 '사재기' 현상까지 생기고 있어 원자재 품귀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상황이다. 장사가 되는 제품인데도 생산라인 일부를 멈추는 제조업체도 있다. 합금철을 만드는 우진산업 한상웅 부장은 "만들면 팔리는데 원자재가 없어 수출 물량을 줄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대책은 딱히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3월 이후에는 업체들이 미리 확보해 놓은 원자재마저 고갈돼 원자재 품귀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진공은 3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원자재를 공동으로 살 때 그 비용을 정부가 좋은 조건으로 빌려주는 협업화 자금을 적극적으로 이용토록 할 방침이다.

무역협회는 한국은행과 시중 은행에 긴급 금융지원을 요청했다. 무역협회는 "지난해 초부터 철강. 곡류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업체들의 자금이 빠르게 소진됐다"며 "한국은행은 원자재 구매용 긴급 자금을 조성해 저리로 제공해달라"고 밝혔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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