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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부안 내소사 짙푸른 전나무숲 香내음 그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서해바다를 바짝 끼고 도는 변산반도의 30번 국도를 달리면「자연이 그린 것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은 없다」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굳히게 된다.
마치 지도라도 그려낼 것처럼 반도의 꼬불꼬불한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면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맞은편 벼랑 저아래에 바다를 조용히 안고 있는 모항마을이 피안의 세계인양 펼쳐진다.
속세와는 별 인연이 없을 것같은 이 한적한 마을은 바다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일렁이자 거대한 바다의 품으로 그냥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빼어난 경관에 취해 그렇게 달리다 전북부안군진서면석포리에 있는 내소사에 이르면 이번에는 올곧고 짙푸른 전나무숲이 또다른 감흥을 전해준다.
절 경내가 시작되는 일주문 바로 앞에는 마을 주민들의 염원이담긴 오색천으로 몸을 감싼 해묵은 「할머니 당산나무」가 주술적신비함을 전한다.백제 무왕때(633년)창건됐다는 이 절에 이르는 전나무숲 터널은 청신한 침엽수향을 음미하며 마음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게 한다.
새로 단장된 사천왕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는 천왕문을 거쳐 경내에 들어서면 폭포처럼 흘러내릴 것같은 절벽이 절을 품에안은채 도열해 있다.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대웅보전(보물 291호)은 전혀 분칠하지 않은 맨얼굴의 깊은 주름을 내보이며 퇴락한 것들의 편안한 기분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토막을 꿰맞춰 지었다는 이 절의 빛바랜 단청과 처마 밑을 장식하는 공포(拱包.처마 밑의 무게를 받치려고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의 화려한 조각이 어우러져 예사사찰이 아님을 한눈에 짐작케한다.
「금빛 새 한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법당 천장을 올려다보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이 금방 살아날 것같고 여덟짝 나무문살에는 장인들이 땀을 쏟아 하나하나 새겨 판 국화.연꽃들이 화사한 꽃밭을 이루 고 있다.
금동불상 뒤편에는 이 땅에 현존하는 것중 가장 큰 백의(白衣)관음보살 좌상이 그려져 있어 법당 안이 모두 선조의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경내에는 조촐하나 종신(鍾身)에 당초문과 용의 형상이 섬세하게 인각된 고려시대의 동종(보물 277호)이 맑은 목소리를 속으로 간직한채 보종각 안에 보관돼 있다.
또 스님들이 설법을 한 대청마루격인 봉래루는 아무렇게나 생긴주춧돌 위에 올라앉아 기둥의 길이가 멋대로였고 스님들의 거처인요사채 역시 겸허한 모습을 하고 서있다.
내소사 북쪽,부안에서 7㎞ 떨어진 하서면에 가면 청동기시대 우리 조상들의 무덤인 고인돌 10여기를 만나게 된다.
이름모를 폐가 앞뒤 마당에 내팽개쳐진듯 놓여있는 이 고인돌들은 여덟개의 작은 돌이 받치고 서있는 남방식 고인돌.
기원전 1천년~3백년께를 살다간 어느 족장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가장 큰 고인돌은 타원형 뚜껑돌의 길이가 약 7m,너비가 약 5m,두께가 약 80㎝ 정도에 무게가 1백t이 넘어 장정 수백명을 동원해야 들 수 있을 정도.
***곳곳에 남방식 지석묘 어린아이의 것이라는「꼬마 고인돌」도 결코 꼬마는 아니었다.
현대식 기중기도 없는 그 아득한 옛날 어떻게 이 거대한 돌들이 이곳으로 오게 됐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누군가 버리고 간 장독대옆 폐가 뒤뜰에는 노란 은행나무와 감나무,겨울이면 불꽃같이 빨간 열매를 매다는 호랑가시나무가 이 폐가에 깃들인 스산함을 고즈넉한 쉼터로 바꾸어준다.
한줌의 흙으로 옛주인을 돌려보내고 홀로 수천년의 세월을 멀뚱히 지켜봤을 거대한 돌더미에서 새삼 실낱같은 온기가 느껴져왔다. [扶安=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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