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세드라 망명과 美의 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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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에 의해 쫓겨난 아이티의 독재자 세드라와 그 일행의 호화판 망명은 국제 정치 무대에서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쿠데타 이후 3년여간 무수한 인권 유린과폭정을 펴오던「죄인」이었음에도 13일 망명길에 오른 그에게서는위축감이 엿보이지 않았다.
美 언론에 보도된 뒷얘기들을 보면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다.「평화적인」정권 이양의 대가로 그가 해외로 빼돌렸거나 본국에 남겨둔 재산들을 모두 보호받게됐다는 소식이다.소식통들에 따르면 미화(美貨)로 9백달러 정도씩의 월급을 받던 軍사 령관 재임 3년여동안 그가 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재산 규모는 무려 1억달러.경제 봉쇄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가운데 권력을 이용해 물자를 밀반입,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수법으로 모은 재산이라는 소문이다.
그가「억만 장자」로 떠날 수 있도록 해준 당사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를 권좌에서 밀어낸 미국이다.백악관은 이날 그의 출국소식을 전하면서 그동안 그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급이 중지돼왔던미국내 금융자산 7천9백만달러에 대한 압류조치가 곧 해제될 것이며 아이티에 남아 있는 그의 저택 3채에 대해서는 임대료까지주기로 했다고 한다.지난달 중순 아이티 사태를 취재하면서 접해본 아이티인들의 생활상은 한마디로 참담함,그것이었다.어떠한 이유에서건 국민을 이 지경으로 만들 어 놓은 책임은 면케해서는 안된다는 분노를 제3자의 가슴속에서도 끓게 만든 그들이었다.그러한 그들을 미국은 지금 다른 얼굴로 대하고 있다.
美당국자들은 세드라에 대한 이같은 대우가 최악의 사태를 막기위한 불가피한 절충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를 두고 국제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하는 정도로 넘기기에는 여간 개운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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