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신도시 지상주차장 노상 무단주차·전용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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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양산신도시의 지하철 양산역 주변 한 상가빌딩. 왼쪽 지하주차장 출입구와 나란히 지상주차장이 있고 주변 도로는 불법주차로 뒤엉켜 있다.

18일 오후 경남 양산신도시 1단계지역인 부산지하철 2호선 양산역 주변.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상가빌들이 하나같이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조였다. 도로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별도의 1층 지상주차장 갖추고 있다. 지상주차장이 건물 1층마다 설치돼 이어져야할 상가 라인이 톱니처럼 듬성듬성하다. 1층 주차공간 주변도로는 무단주차한 챠량들이 꼬리를 물고 도로변을 점령했다. 일부 빌딩 지상주차장은 창고나 식당 노점으로 불법 전용되고 있었다.

건물 주인들은 “양산시의 강요에 못이겨 이럴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도시에선 이런 식으로 설계했다간 건축 심의조차 통과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2조7000억원이 투입돼 2010년 완공될 1000만㎡ 규모의 양산신도시의 중심상권이 기형적인 건물 구조 때문에 슬럼화되고 있다.

양산신도시(양산물금택지개발지구) 지구단위계획 지침(24조)의 ‘모든 상업·업무용지는 법정 주차대수의 10%이상을 지상에 설치해야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상업용지 분양자들은 지난 7월부터 “2, 3단계 상업지역 조성을 앞둔 지금이라도 지상주차장 강제규정을 폐지해달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지침을 만든 양산시와 토지공사는 “1단계에 적용한 규정을 2, 3단계에서 폐지하면 형평에 어긋난다”며 거부하고 있다.

◆지구단위계획 지침이 뭐길래=양산신도시 지구단위 계획 지침은 1994년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가 양산시와 협의해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건교부의 ‘1종지구단위계획 수립지침’에 따르면 필요할 경우 양산시가 변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94년 지침을 만든 취지에 대해 토지공사와 양산시는 “짧은 시간 거쳐가는 주민들이 노상에 무단주차하는 것을 방지하고 여성 운전자들이 관리가 허술한 지하주차장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교통 전문가들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관리가 허술한 지하주차장은 혐오시설로 인식된 데다 차량의 수도 많지 않아 다른 신도시도 지상주차장 설치를 의무화하는게 추세였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상가빌딩 4채를 건립한 권모(35)씨는 “건축허가 서류에 1층보다 임대료가 싼 옥상이나 2, 3층에 주차장을 설치하는 내용의 설계를 넣었다가 혼쭐만 났다”고 말했다.
◆논란=올해말 부지조성이 완료돼 곧 건축에 들어갈 2단계지구 분양자들은 “지상주차장으로 인해 오히려 노상 무단주차를 유발하고 있다”며 관련지침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범서산업개발은 “녹지비율을 늘리고 눈·비·먼지·차량파손을 피하기 위해 요즈음은 지상주차장 없는 도시나 건물이 장점으로 홍보되고 있는 판인데 유독 양산시만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은 2000년 이후 택지개발지구 지구단위계획 지침에서 지상주차장 강제규정이 자취를 감췄다. 부산 정관신도시와 화명지구, 울산 구영지구, 김해의 내외·장유·율하·진영지구 등이다. 정관신도시 이외에는 모두 양산신도시의 지상주차장 의무화 지침을 만들었던 토지공사가 사업을 맡았다. 김해북부지구의 경우 당초 ‘법정 주차장 규모의 5%를 지상에 설치하라’는 지침이 있었으나 얼마뒤 폐지했다.

양산시에는 이에 대한 역민원도 접수돼 있다. ㈜메트로는 “새로 건물을 지을 사람만 혜택을 입고 이미 지은 사람들은 상가 과잉공급의 피해만 본다”며 지상주차장 의무 규정 폐지를 반대했다.

양산시도 내부적으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신도시 관리를 맡은 공공시설과는 “지침을 바꾸면 역민원을 낸 사람들이 집단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혼란을 감당키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건축과는 “주차장의 지하화는 전국적인 추세이고 의무규정이 폐지되면 이미 건축한 사람도 지상주차장의 용도를 바꿔 고루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14일 양산시에 “지상주차장 의무화가 건축 계획상 장애요인이 되어 실익이 적을 수 있으므로 주변 도시(지상주차장 강제조항을 없앤 김해 북부지구 등)들의 변화 추세에 적절히 대응하라”는 권고문을 보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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