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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여행>秋波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가을을 보는 관점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중국이나 우리는 가을이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준다고 하여 천자의 德에 비유했다.또 모든 생명체를 凋落(조락.시듦)으로 인도한다 하여 무서운 계절로 보기도 했다.
특히 그것을 재촉하는 서리(霜)의 존재야말로 위엄과 공포의 상징이었다.「秋霜 같은 叱責」이니 「서릿발 같은 명령」이 그것이다.그래서 조선시대에는 刑罰을 관장하는 장관을 秋官이라고 불렀다.영어에서 가을을 「fall」로 표기하는 것도 凋落과 관계가 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가을은 또한 멋진 계절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을은 더욱 그렇다.높고 파란 하늘,불타는 단풍,황금물결의 들판,쓸쓸한 기러기떼…,그래서 가을을 天高馬肥,燈火可親,征雁紅葉(정안홍엽.기러기 날고 단풍 듦) 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국화는 싸늘한 기운을 받아 더욱 함초롬하고 호수의 물빛은 유난히 푸른 때다.그래서 시인들은 가을을 菊傲水璧(국오수벽.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파람)의 계절이라고도 했다.
시인들은 또 가을 호수의 물을 美人의 눈에 비유하기도 했다.
바람이 스쳐 잔잔한 물결(波)이 이는 모습은 마치 미인이 눈 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하다.그래서 「秋波」는 「임을 향해 보내는 미인의 눈웃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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