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로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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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두 살 때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라 리 할머니(72·오른쪽에서 둘째)가 함께 온 아들·며느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구먼. 이젠 여기에 뼈를 묻어야지."

10월 22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의 순야센 마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알렉산드라 리(한국 이름 리순신.72) 할머니의 눈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물기가 어른거렸다. 생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기쁨과 낯선 환경에 다시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두 살 때 우수리스크 인근 마을에서 타슈켄트로 강제로 이주당한 리씨는 이날 작은아들 예브게니 유(47)씨와 우즈벡 며느리 무흐타바르(42), 19세와 12세 된 손자 2명을 데리고 이곳에 도착했다. 땅을 얻어 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다른 고려인 3가구 11명도 함께 왔다. 리씨 가족은 타슈켄트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고, 김치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서 악착같이 일했으나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져 연해주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되돌아오고 있다. 선조가 피땀으로 일구다 떠나간 땅에서 마지막 삶의 희망을 찾아보려는 이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서 5만 명 정도가 연해주로 이주해 왔다.

한국 민간단체 동북아평화연대(동평)가 이들의 이주를 돕고 있다. 2003년부터 연해주에서 고려인 정착 지원 활동을 해 오고 있는 동평은 올해 사업으로 '70-7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연해주로 이주를 원하는 70명의 고려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동평은 이주자들에게 한 가구당 미화 2000달러(약 180만원) 상당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정착지원비로 3000달러 정도를 무이자로 융자해 준다.

하지만 재이주한 고려인들이 낯설고 물 선 땅에서 새 삶을 일구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동평의 신명섭 상임위원은 "140년 전 시작된 한민족의 유라시아 유랑이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연해주=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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