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업에 '고용없는 성장' 구조화 조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기업들의 고용.인사 등 인력정책이 갈수록 '고용없는 성장형(型)'에 맞춰지고 있다.

아웃소싱을 더 많이 활용하고, 당장 필요한 인력만 수시로 뽑는 채용 관행이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채용 정보업체 헬로잡이 주요 기업 1백1곳의 인사 담당자와 직장인 4천7백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인력정책 및 직장인 의식 변화 조사'는 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없는 성장'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용 구조의 이중화=중견 건설업체 S사는 10여명의 본부 관리인력을 제외하고 엔지니어.현장 기술자.노무직 등 3백여명을 1백% 계약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 회사 인사 관계자는 "건설업체의 비정규직 비율은 통상 40% 정도지만, 최근 비정규직 비율이 1백% 가까운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헬로잡 조사 결과 기업의 72%가 생산.업무 인력 운용에서 크고 작은 규모로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전체 직원 4천여명 중 생산.유통영업.사무보조 1천8백여명을 인력파견업체에서 아웃소싱하고 있었다. 롯데제과도 직원의 30% 가량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반면 이른바 소수의 '핵심인재'에 대한 채용은 강화되고 있다. 삼성화재는 미국.유럽 등 해외 보험사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를 매년 서너명씩 위험관리 및 투자운용 부문에 스카우트하고 있다.

쌍용정보통신은 지난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2백명 이상의 프리랜서를 계약직으로 채용했지만, 이중 10명 이내의 극소수 핵심 기술 보유 인력을 정규직으로 스카우트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 선호=수시채용이 늘어나면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능력과 자격증을 갖춘 경력직을 채용하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이른바 '맞춤형 채용'이다.

세라젬의료기는 해외 마케팅을 담당할 과장급 직원을 선발하면서 '영어능력 상급, 일어는 중상, 회계 및 재무관련 지식 보유, 수출입 업무 경험'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이 회사 인사 담당자는 "입사 후 직원을 교육시킬 여유가 없어 조건을 까다롭게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채용 때 면접과 실무 테스트도 강화되는 추세다. 삼성전자의 경우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을 크게 강화했다. 인사팀 뿐 아니라 실무 부서의 과장까지 참여하고, 질문도 사례를 주고 대응방안을 묻는 식이다.

◇직장인들도 괴롭다='고용없는 성장'은 구직자 뿐만 아니라 직장인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조사 결과 기업의 일반적 정년인 56~60세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믿는 직장인은 16%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인 52.9%가 45세 이전에 퇴직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40세 이전에 현 직장을 떠날 것이라는 응답도 30%나 됐다.

또 3분의 2 가량이 "전문지식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