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장하고 힘들었던 결심, 19세 이혼과 50세 뉴욕 쇼룸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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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뉴욕 진출

월간중앙사회 진출을 하고 오늘날까지 60평생에서 도전 정신과 결단력 두 가지가 늘 내 삶의 갈림길에서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으며 나를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19세 나이에 이혼하게 된 일이었다.

지금도 여자에게 ‘이혼’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 형편인데, 60년 전의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은 그야말로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내 인생의 앞길을 생각해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이혼이라는 결정을 강행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첫 번째 힘든 결단이었다.

두 번째는 20세에 미국으로 패션 공부를 하러 떠난 일이다. 미지의 세계로 새로운 인생을 향한 도전의 첫 걸음이었다.

그 후 많은 도전을 거듭하며 살아오면서 크게 힘들었던 결정은 1970년대 말 뉴욕 7번가에 당당히 쇼룸을 차리고 미국 패션계에 진출한 사건이다. 쇼룸이란 바이어들을 위해 샘플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내가 뉴욕 7번가에 진출한 1980년대는 세계적으로 디자이너 중심의 패션시장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역사상 기라성 같은 유럽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이어진 패션의 전성기였다. 당시 나는 50세로 한창 일할 나이였으며, 패션의 흐름과 내 디자인 철학 역시 잘 맞아떨어졌다.

그 후 나는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뉴욕 7번가에서 1년에 네 번씩 컬렉션을 선보이고, 매년 지구를 몇 바퀴씩 돌며 마케팅을 했다.

▶1974년 미국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바이어를 대상으로 연 노라 노 패션쇼. 미국인 모델이 입고 있는 분홍색 드레스의 실크 나비 문양은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20세의 나이로 새로운 인생을 선택했을 때나 50세에 뉴욕 패션의 중심 7번가에 도전했을 때나 그 각오의 비장함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두 가지 결단은 내 생에서 가장 힘겨운 일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결단은 내 소신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두 번째 결단은 나를 국제적 디자이너로 성장시켜 주었다.

1980년대에 반월 프린트 공장에서 직원들이 파업을 하고 데모를 했을 때도 나는 어려운 결단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신속하게 공장 문을 닫고 폐업으로 맞설 준비를 했다. 마지막 위기는 IMF 외환위기라는 듣지도 못한 이름의 사건이 닥쳐 난생처음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던 때다.

평소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가 ‘생각은 깊이, 결단은 신속하게’라는 말이다.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하다 시기를 놓쳐 파산하는 실례를 많이 보아 왔다. 때문에 나는 IMF 외환위기 당시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큼 모든 구조를 축소하고 인원을 줄여 지출을 최소한도로 제한했다.

요즈음 사람들이 팔순까지 현역에서 일하는 나를 보고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한 가지, 도전 정신이라고 말한다. 도전에는 끝이 없다. 도전과 야망은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야망은 목적이 뚜렷하며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난다. 그러나 도전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열정과 스릴이 그 원동력이다. 잘되면 다행이고 잘못되면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뿐이다.

내 생에서 가장 어렵게 내렸던 결단과 도전은 나에게 늘 생생하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커다란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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