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진 질문… 서론은 생략/국회 풍속도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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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원끼리 분야별로 역할나눠 중복피해/질문서 이틀전 배포… 공무원 발길 뜸해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여야의원들은 거의 물컵에 손을 대지 못했다.
새 국회법에 따라 질문시간이 종전의 30분에서 15분으로 절반이 줄어들어 원고를 읽어내려가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줄어든 질문시간에 맞춰 연설문도 짤막하게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채 못마칠까봐 서둘러 질문에 들어갔다.
종전대로라면 야당의원의 본회의 연설은 국내외정세를 한바퀴 조망하고 현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나름대로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역사와 지정학적 관점이 동원되고「개혁」「민주」「인권」등의 정치성 용어들이 가득한 가운데 상당한 시간을 정치연설에 할애한게 지금까지의 대정부질문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연설의「장광설」을 늘어놓을 시간이 없다.
의원들은 단상에 올라가자마자 서론을 거의 건너뛰다시피 하며 막바로 현안으로 들어갔다.
첫질문에 나선 민자당 권해옥의원(합천)은 짤막한 정세분석에 이어 본질문으로 직행했고,민주당 유준상의원(보성)은 자신의 소개를 마친뒤 서론도 없이 바로 질의에 들어가 노동·외교정책의 난맥상을 짚었다.
민주당의 경우 유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부문,김충조의원(여수)이 북한 핵관련,그리고 김종완의원(서울 송파을)은 문민개혁등 국내정치부문등에 중점을 두는등 세사람이 분야별로 역할을 나눠 중복을 피하려는 모습도 역력했다.
새 국회법에 따른 풍속도의 변화는 의원들의 질문준비 과정에도 나타난다.민주당은 며칠전부터 3∼4차례 대정부질문자 회의를 갖고 질문내용을 조정했다.의원들의 관심분야와 당에서 요구하는 사안을 모으고 그에따라 각자가 질문의 중심을 잡았다.
그래야 중복질문,백화점식 질문을 피하고 짧은 시간에 알찬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정부질문 이틀전인 2일오후 의원회관은 낯선 손님들로 북적댔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이나 통일원·내무부·법무부등 4일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과 관련있는 정부부처의 4∼5급 실무자들이 질문서가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물론 개정 국회법에 따라 질문요지서는 48시간전인 2일 오전 이미 정부에 발송됐으나 질문의 전체문맥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을 받아가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잘아는 의원을 통해 은밀히 질문관련 정보를 얻어가던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이렇게 미리 질문서를 받아 답변을 준비했기 때문에 4일의 본회의장 주변은 전보다 한결 한산해졌다.정부부처의 실·국장등 간부공무원들이 회의장 복도에서 답변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의원비서진의 질문 문안 작업도 수월해졌다.
국회법 개정전까지 질문서는 대부분 전날 밤늦게나 마쳐지는게 상례였으나 이번에는 이틀전께에 완료됐다.새로 도입된 4분 자유발언제나 긴급 현안 질문제등 본 질문을 보완할 수 있는 방편이 마련된 것도 한 원인이다.
민주당은 지하철·철도 파업이나 고속전철문제등의 현안은 대정부질문이 끝난뒤 따로 다루는등 새 국회법의 적실성을 시험해볼 계획이다. 민주당 장기욱의원(전국구)은 2일 본회의에서 4분 자유발언제를 도입이후 처음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 임시국회는 짧아진 대정부질문 시간등 개혁 국회법의 첫 실험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여야 의원들의 표정에서도 보다 생산적인 국회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하루였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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