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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조산업으로 넘어간 오양수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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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19면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가운데)이 14일 서울 중구 순화동 순화빌딩에서 열린 오양수산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권 확보에 승리한 뒤 김명환 오양수산 부회장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악수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기자]

‘싱거운 싸움’이었다. 오양수산은 14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조CS가 제안한 신규이사 선임안이 찬성표 52.05%를 얻어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미 절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했고 사흘 전에 김명환 오양수산 부회장이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 판결을 받은 터라 사조의 승리는 예상됐던 일이다. 사조 측은 조만간 오양수산 이사회를 열고 김명환 대표이사 해임안을 처리하고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오양수산 경영권 분쟁은 6월 초 사조CS가 오양수산 창업주인 고(故) 김성수 회장과 유가족 명의의 회사 주식 35.4%를 127억원에 사들였다고 공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회사가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어간 사실을 뒤늦게 안 김명환 부회장 측이 즉각 반발해 주식 매집, 고소전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분쟁을 벌여온 것.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고인 뜻만 보고 인수, 실사도 안 해” #김명환 오양수산 부회장 “아버님의 뜻 아니다, 진실 밝힐 것”

중앙SUNDAY는 14일과 15일에 걸쳐 “평소 ‘멘토’로 모시던 김성수 회장님의 회사를 인수했다”는 주진우(58) 사조그룹 회장과 “아직 회사를 되찾아올 불씨가 남아있다”고 주장하는 김명환(52) 부회장을 각각 만났다. 두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고 김성수 오양수산 창업회장은 아직 살아있는 듯하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김명환 부회장 측이 ‘고 김성수 회장이 서명했다는 위임장(자신의 오양수산 지분 매각을 법무법인 충정에 맡긴다는 내용)은 위조’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위임장을 확인했나?

“전혀 몰랐다.”

-고 김성수 회장과는 어떤 관계인가.

“미국 컬럼비아대에 유학하던 시절 선친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스물여덟에 회사를 물려받았는데 수산업계 ‘태산북두’인 김성수 회장님을 찾아가서 설렁탕을 얻어먹으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해운은커녕 낚시도 모르는 나에게 30년간 후견인이자 멘토 역할을 해주신 분이다.”

-자세히 얘기해 달라.

“사조가 수산업에 뛰어든 것이 1970년대 초반이다. 당시만 해도 사조는 출판업을 하던 회사였다. 국내 최초의 수산업 회사가 고려원양인데, 이 회사 역시 출판업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참치 잡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연에서 10여 개의 인쇄·출판사가 원양사업에 나섰다. 그중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김성수 회장이었다.”

-어쨌든 ‘멘토의 장남’이 경영하던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집안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나는 ‘오양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이다. 그것이 내 사명이다. 회사를 살리는 것은 회장님의 염원이기도 하다.”

-오양수산 인수 제의를 받은 것은 언제였나.

“회장님께 감히 ‘(회사를) 파시오’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오양이 매물로 나온 지는 1년쯤 됐다. 우리투자증권에서 제의가 왔다. (인수를 결정하고 나서) 매각 가격을 묻지도 않았다. 장부도 보지 않았다. 당시 주가(8000원대)에 30%의 경영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1만2600원을 줬다. (김 회장의 대리인 측에서) 달라는 대로 준 것이다.”

-어떻게 실사도 없이 회사를 인수하나?

“회장님 생각만 했다.”

-오양은 가족 간 분쟁이 심각했다.

“그렇게 심각한 줄 알았으면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권 분쟁 시비가 사그라진 만큼 주가는 빠질 텐데?

“지금 주가가 4만원대다. 중장기적으로 5만원은 갈 거다.”

-왜 그런가. 회사 정상화 방안은?

“지금 오양수산은 많이 위축돼 있다. 오양을 인수하면서 사조는 참치 45%, 명태는 30%의 점유율을 차지해 국내 수산업의 최강자가 된다. 오양맛살, 대림선어묵 등 1등 브랜드만 4개다. 냉동·냉장 제품들이어서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는다. 시너지가 안 생기겠나? 당연히 회사는 좋아질 것이다. 구조조정 얘기하는데…. (사조가 인수한) 신동방, 대림수산을 봐라. 인위적 구조조정은 한 번도 없었다. 피합병 회사의 직원들과 열정을 합치면 신천지 개척은 별문제 없다.”

-앞으로 동원그룹과 경쟁하는 것인가.

“동원의 김재철 회장님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8형제 장남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 자체로 존경스럽다. 또 한 가지는 수산업계의 파이어니어라는 점이다. 동원은 경쟁보다는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김명환 부회장과의 관계가 앙금으로 남는다.

“회장님 측으로부터 ‘(김 부회장이) 곤란한 지경이 되지 않도록 알아서 생각해줘라’는 뜻을 전달받았다. 우리로서는 같이 가고 싶다. 임원회의를 열어봐야겠지만 최상의 예우를 해주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법적인 문제는 다르다.”(김명환 부회장은 차명으로 오양수산 지분을 보유해오다 금융거래법·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고소가 된 상태다)

-신동방에 이어 대림수산, 캐슬렉스(골프장) 등 사조의 M&A가 거칠 것이 없다.

“(웃으며) 내일(15일) 중국에 간다. 칭다오에 있는 골프장을 인수했는데 오픈 행사가 있다. 나는 골프는 안 치지만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이익을 내면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도 기업 인수는 더 하고 싶다. (웃으며) 다만 돈이 없다.”

-전공도 정치학(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컬럼비아대)이고 재선의원 출신이다. 내년에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데.

“사람보다 고기잡이가 더 낫다.”

김명환 오양수산 부회장

-지금 심정은.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2003년부터 고생시켰다. 이번 임시주총만 잘되면 회사에 새로운 혁신을 가하려고 했다. 동요하지 말고 오양수산을 지켜주길 바란다.”

-주총이 끝나고 무슨 일을 했나.

“마음이 복잡해서 드라이브를 갔다. 집에 들어와선 아내를 위로했다. 혹자들은 고부간의 갈등이 가족간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 아내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시부모님께 더운밥을 해 드린 착한 여자다. 군용 양말도 기워 신던 시아버지를 30년 동안 봉양했다. 그런데 ‘몹쓸 며느리’라고 오해받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주진우 회장은 작고한 회장님을 멘토라고 하던데?

“글쎄? 2000년 회장님이 쓰러지신 뒤에 문병 오신 적이 없었다. 주식을 인수했을 때도 단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았다.”

-전세를 뒤집을 카드가 있는가.

“회사를 찾아올 변수는 아직 남아있다. 아버님이 서명했다는 위임장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위임장이 무효라면 M&A도 원천 무효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진실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사를 남에게 파는 것은 절대 아버님의 뜻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오양수산 적대적 M&A 진실 규명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싸우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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