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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스포츠판엔 신정아씨 없나

중앙일보

입력

한국 사회는 지금 몸살을 심히 앓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라는 '허위 학력'입니다. 신정아씨의 가짜 꼬리가 잡히면서 촉발된 사건은 가장 만만하게 노출된 연예계를 강타하더니 대학과 공무원 사회 심지어 사기업까지 직원들의 학적부를 확인하는 소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비호 의혹을 받고 있던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씨와 100통 가까운 핑크빛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쯤되면 블랙 코미디입니다.

가수 조영남은 한국판 '문화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학력 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 거기에 기생하고 일익까지 담당하고 있던 이들의 허위가 낱낱이 까발려지면서 그들의 우상성 또한 만천하에 하방(下放)되었으니까요.

그러나 허위 학력의 벼락을 맞지 않은 분야가 있었습니다. 노숙자들과 스포츠계입니다. 그 곳에선 학력이란 게 그리 절실한 도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빌어 먹고 아무데나 나뒹굴어 자는데 대졸과 국졸의 차이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포츠계는 이미 오래 전 '학력 파괴'가 이뤄진 선진지대였습니다. 1995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김인식 당시 OB 감독은 대놓고 육두문자를 쓴 적이 있습니다. 기자들에게 친절하기로 소문난 김 감독이 불그락푸르락 욕설까지 내뱉은 것은 '가방 끈'과 관련된 기사 탓이었습니다. 한 신문에서 OB는 김 감 독을 비롯해 선수들도 고졸이 많아 '고졸팀' 상대팀 롯데는 김용희 감독부터 대졸들이 많아 '대졸팀'으로 비교한 것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야구하는 거랑 학력이 무슨 관계가 있냐"면서 "우리 때(1960년대 중반)는 야구 잘하면 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실업 팀에 곧바로 갔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자유계약선수제도가 생겨 고교 선수들의 프로 직행은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스포츠계는 학력 지상주의에 순결한 처녀지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종목에서 아직도 구린내 진동하는 'K대' 'Y대' 등 파벌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학력이 아닌 학교로만 바뀌었을 따름입니다.

프로야구 쪽으로 범위를 좁혀 봐도 그렇습니다. '허위'가 판을 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메이저리그나 일본 연수가 그렇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의 경우를 보면 과연 연수인지 말 그대로 바깥으로 놀러 나간 '외유(外遊)'인지 헷갈립니다.

구단에 등록도 하지 않고 틈나면 야구장이나 왔다갔다 해 놓고선 그 고상한 말을 갖다 붙이지를 않나 '자치기' 연수를 하러 온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로 뻔질나게 골프장이나 출입하지를 않나 배팅 볼을 던지면서 줄어드는 공 박스를 보고 땀의 미소를 짓는 게 아니라 파친코에서 수북하게 쌓인 구슬 박스를 들고 더 흐뭇해 하지를 않나.

그러고선 귀국해서 '명문 구단 연수를 다녀왔네'라며 버젓이 이력서에 올려 놓는 양심불량의 지도자들이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들이 졸업하지도 학위를 받지 않고도 '나 00대 나왔어' 하는 연예인이나 가짜 교수와 다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부 에이전트와 스카우트들 또한 '사짜 판'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에이전트인줄 알았더니 단순한 후견인으로 확인된 이도 있었습니다. 더욱 선수와 금전적인 트러블을 일으켜 법정까지 간 싸움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팀에 소속된 스카우트인줄 알았더니 스카우트 밑에 고용돼 한국 선수들을 연결해주고 소개비나 챙기는 거간꾼에 불과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청렴이나 순수는 아무나 달 수 없는 훈장입니다. 그러긴 커녕 그 반대가 활개를 치고 그래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발길질해서 쫓아내는 사회 야구판이 돼서는 안되겠습니다.

[USA중앙 구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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