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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풍경] 불확실성 핵심은 청와대의 무게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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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제 설도 지났다. 그러니 본격적 '원숭이 해'에 들어선 것이다. 불현듯 '침팬지가 대통령이 되어도 잘되는 나라' (권회섭 저) 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원숭이 해에 우리나라가 과연 그런 이상국가를 구현할 수 있을지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사 경제부장과 기업총수들을 따로 불렀다. 이 두 모임에서 盧대통령이 녹음기처럼 반복한 얘기가 있다.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의 구체적 내용이 무어냐고 물으면 (모두들)대답을 못 한다"는 게 그의 푸념이었다. 결국 실체도 없는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애꿎은 대통령만 탓하지 말라는 사실상의 꾸지람이었다

나라가 심히 걱정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노무현식'논리전개 방식이다. '상대방이 대답을 못 하면 내가 옳다'는 식의 논리형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때때로 대답을 '못하는'것이 아니라 대답할 가치가 없어 '안하는'경우도 있는 것이다. 초대해준 사람 면전에서 "불확실성의 실체는 바로 盧대통령 당신이오"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을 지닌 사람은 없다. 더욱이 盧정부의 외교노선을 '탈레반'에 비유한 외교통상부 간부가 재갈물림을 당하고, 기업에 대한 불법자금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용기(?)있는 발언은 '바위에 달걀 던지기'다.

盧대통령은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둬왔다. '소모적'이었던 지난 1년을 보낸 지금, 盧정부는 일자리 창출, 다시 말해 성장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반드시 동의어는 아니지만)쪽으로 무게 추를 옮겨 놓았다. 대미(對美)외교와 관련, 盧정부는 '자주'를 강조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자주'가 껄끄러운 '반미(反美)'대신 쓰인 용어라고 인식해왔다. 1년이 지난 지금, 외교부는 이제 가장 '친미(親美)'적인 반기문 장관이 지휘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뿐인가. 盧대통령은 노동자 편에 선 사람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盧대통령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도 요구하고 있다.

늦었지만 盧정부의 노선변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제야 제자리를 튼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언제 어떤 형태로 바뀔지 모른다는 데 시장이 느끼는 불확실성의 실체가 있다. 오늘도 시장은 '盧대통령의 궁극적 속내'를 묻고 또 묻고 있다. 좌(左)에서 우(右)로 옮겨진 盧정부의 무게추가 언제 또다시 좌(左)로 옮겨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바로 불확실성의 핵심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은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은 그대로 놔둔 채 흉내만 낸 꼴"이라고 비판했다.

朴회장은 특히 "출자총액규제, 수도권 규제, 부채 비율 등 핵심 규제가 존속돼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정부가 이익집단의 불법행위를 묵인, 법치주의가 안 통하고 '떼법'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꼬집은 朴회장은 "3류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에게 "침팬지가 대통령이 되어도 잘되는 나라"라는 꿈은 아직 요원하다는 얘기다.

양봉진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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