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웃음을 파는 ‘방송 보부상’ MC 민경수

중앙일보

입력


“어디서 많이 봤는데, TV에 나오는 사람 맞죠?”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MC 민경수입니다.”
평일인데도 호남선 고속버스 터미널은 마지막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시끌벅적했다. 그 한구석, 터미널 휴게실에서 광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얼굴을 알아보고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 아는 체 하며 말을 건네는 사람, 수다를 떨며 우리의 만남을 시샘하는 아줌마들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니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넉살스러운 말투, 시원한 인상, 수수한 청바지차림에 운동화, 큼직한 가방, 눈가에 어린 장난기…. 듬직한 덩치만 빼면 외형에서 느껴지는 체감나이는 영락없이 20대 초반이다.

‘전국권’ 소속의 걸어 다니는 아나운서

올해로 방송 2년차인 민경수(31)씨는 현재 광주KBC(지역민방), 안동MBC, 한국경제TV, YTN, 리빙TV, 서울시 인터넷 방송, 지하철 이동방송 코모넷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MC다.
대학 졸업 후 잘 나가는 IT회사에 근무하다가 대학시절 경험했던 방송에 대한 매력을 잊지 못해 방송계에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것만이 아니다. 수영강사이면서 세 번의 철인3종경기 완주기록까지 갖고 있다.
“매니저 없이 혼자 스케줄을 관리하나요?”
“그럼요. 스케줄이 지금의 두 배 쯤 돼도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살아 왔는걸요.”
서로 다른 7개의 방송국에서 활동해야하는 그의 스케줄관리에 관심을 보였더니 메모가 빽빽하게 적힌 노트를 보여준다. 전국 곳곳의 버스시간표, 기차시간표, 요금표는 물론 택시비, 식당전화, 도보거리 및 시간까지, 톱니같이 움직여야 하는 그의 일상이 노트 곳곳에서 보인다. 대충 봐도 얼마나 꼼꼼하게 시간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알겠다.
“방송인에게는 시간약속이 생명이죠.”
“이렇게 바쁘면 운동할 시간도 없을 것 같은 데….”
“체력은 방송의 기본이죠. 지금도 매주 두 번 정도는 수영장에 가요. 목요일 저녁에는 수영 동호회 수영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그러고 보니 노트에 ‘수영장 가는 시간’이 화요일, 목요일에 두 시간씩 적혀 있었다.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대해 물었더니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같이 하는 스포츠로 세 번이나 참가해서 완주했다고 한다. 기록은 물어보진 않았지만 완주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세 번이나.
나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의 체력관리에 집중됐다. 그도 그럴 것이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그가 이런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체력관리는 어떡할까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때는 흔한 말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어요. 학교 가다 현기증 나면 쉬었다 가느라 지각대장은 맡아놨고 양호실이 내 별장이었다면, 안 믿기죠? 공부보다는 체력이 먼저라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학교도 내내 걸어 다녔고 야구, 농구, 축구 등 구기운동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어요.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갈 때도 엘리베이터는 못 타게 하셨죠.”

방송은 여행, 걷기는 나의 즐거움

그렇게 운동을 좋아했던 그가 요즘은 방송스케줄 때문에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바로 ‘웬만한 거리는 걷기’다. 실제로 그에겐 그 흔한 차가 없다.
“운전면허도 있고 운전도 잘합니다. 그렇지만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방으로 가려면 하루 절반을 차안에서 보내야 되는데, 자가용으로 다니면 책 볼 시간도 부족한 잠을 메꿀 수도 걸을 시간도 없잖아요. 그 뿐인가요, 통행료에 세금에 기름값에…. 자동차 유지비 그거 장난이 아니잖아요. 아직은 젊으니까 걷는 게 좋아요. 특히 방송 끝나고 여유를 부리며 이곳저곳 세상구경도 하면서 터미널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너무 좋아요. 아마 그 기분 이해 안 될 거예요.”
그에게 ‘방송은 여행’이고, 걷기는 그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걷기’ 얘기가 나오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톤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지면서 ‘걷기 예찬’을 시작한다.
강원도 가평 잣나무 숲에서 수해 직후 유실된 도로를 따라 그 무더운 여름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산을 타고 오르며 촬영했던 일이며, 전남 완도의 신지도 일대를 몇 시간 동안이나 걸어 다니며 촬영해야 했던 일 등 전국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걷기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며 많이 걸으면 올바른 발성에도 도움이 돼서 방송 전에 따로 발성연습을 하지 않아도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짧은 방송경력이지만 방송은 항상 나를 철들게 해줍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꼭 방송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요즘은 ‘방송은 여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이해하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생각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려면 걷는 게 좋더라구요. 자동차를 타면 느끼지 못 하는 걸 걸으면서는 많이 접하거든요. 가끔씩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행이 좀 더 즐거워지죠. 아무래도 사주에 역마살이 있나 봐요.”

함께 걷고 여행할 수 있는 여친 소원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유분방하며 구김살 없이 순수한 ‘사람 민경수’를 보았다. 그리고 정형화된 잣대를 아무리 들이대어도 한 치의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의 안쪽에서 흐르는 보헤미안의 피도 느꼈다.
그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보이며 방송 꼭 한 번 봐주라고 시간대를 알려주고는 대합실 밖으로 급하게 나갔다. 버스 쪽에서 아줌마들의 하얀 웃음소리가 뜨거운 여름공기와 함께 대합실 안으로 묻어 들어 왔다.
“나이 먹어서도 지금처럼 계속 방송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함께 손잡고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건강한 여자 친구가 있어서 정말 많은 것을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수한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나서 흥얼거려봤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에~’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화기애애한 장터마다 물건을 내놓고 파는 보부상의 모습과 그가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웃음을 파는 보부상 MC 민경수, 오랫동안 전국 어디에서나 그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