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째 칩거 박근혜 "정권교체 위해 최선 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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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여의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경선후보가 캠프로 사용했던 엔빅스 빌딩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3일 "정권교체를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그를 만나고 나온 최병렬 전 대표가 전했다.

박근혜 캠프의 상임고문이었던 최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삼성동 자택을 찾아가 그를 40분간 면담했다.

최 전 대표가 집안에 들어서자 박 전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응접실로 안내했다고 한다.

최 전 대표는 "표정이 참 밝고 편해 보여서 내 마음까지 편해질 정도였다"며 "박 전 대표가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에게 20일 전당대회장에서의 '승복 연설' 얘기를 꺼냈다.

▶최 전 대표="그날 연설이 세간의 화제다. 정말 대단하시더라. 많은 감동을 받았다."

▶박 전 대표="(미소만 지으며)…. 저를 지지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미안합니다. 고맙고요. 모두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자는 오전 10시부터 하루 종일 자택 앞을 지켰지만 박 전 대표는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20일 전당대회 뒤 나흘째 칩거다.

이날 박 전 대표 집 앞 골목은 한적했다. 평소엔 이 집과 담장이 붙은 삼릉초등학교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에 제법 시끌시끌한 곳이지만 학교는 방학이었다. 특기 적성 교육을 받는 학생들 외에 지나다니는 이는 거의 없었다.

박 전 대표 집엔 남자 집사 한 명과 여자 주방 도우미 한 명만 정기적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비서 두 명이 번갈아 가며 하루에 한 번꼴로 들르지만 박 전 대표가 외출하지 않자 잠시 머물렀다 되돌아갔다.

오전 11시. 여성 3명이 택시에서 내려 박 전 대표 집을 가리키며 얘기를 나눈다. 삼릉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학부모들이었다.

이들은 "(경선에서) 표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더라" "여자라서 많이 손해 본 것 같다"고 했다.

그 뒤 열성적인 남성 지지자 3명이 차례로 자택 문을 두드리며 "박 전 대표를 만나게 해 달라"고 외쳤다. 그들은 집 앞에서 몇 시간씩 버티다 발길을 돌렸다.

이 중 50대 남성은 비서의 팔을 붙들고 "경선 여론조사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주까지 자택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첫 바깥 나들이를 할 것 같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들과 약속된 '뒤풀이'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따라서 그의 활동은 다음주부터 재개될 듯하다.

이 자리에는 홍사덕.안병훈 전 캠프 공동선대위원장과 서청원.최병렬 전 캠프 상임고문 등 선대위 상근자 8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십시일반으로 갹출해 자장면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공식 활동을 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다음주 중 만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박 전 대표의 유정복 비서실장은 "박 전 대표가 휴식을 취하고 있고 이 후보가 구체적인 회동 제안을 한 것도 아닌 만큼 지금 뭐라고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밤 10시2분 자신의 미니홈피에 지지자들을 향해 "그저 한없이 미안하다. 그분들의 어렵고 귀한 선택에 영광을 안겨 드리지 못한 제 자신이 스스로 용서되지 않고 죄스러울 뿐"이라는 자책의 글을 직접 올렸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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