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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되는 미 슈퍼 301조/김은상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시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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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과민반응은 압력 자초한다/대화채널 늘려 「마찰의 불씨」 줄여야/국제분쟁은 다자간 규범으로 해결
지난 3일 클린턴 대통령이 슈퍼 301조 부활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그동안 우려됐던 미국의 패권주의적 통상정책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러한 미국의 통상정책에 대해 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피터 서덜랜드 사무총장은 다자간 무역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조치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내의 언론(Journal of Commerce)조차 이를 GATT 협정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과거 예에 비춰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조치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이 타결되어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정책을 취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하면 UR협정에 의한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로도 자국의 무역수지적자를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미국의 무역수지적자는 93년 1천1백58억달러인데 이중 거의 60%에 해당하는 5백93억달러가 대일 무역수지적자로 이의 축소 없이는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일본의 제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상관습이나 국민성 등 다른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UR협정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에 대해 구체적으로 미국의 자동차를 몇대 수입하겠는가,통신분야의 정부구매에서 미국제품을 어느정도 수입할 것인가 등과 같이 대미 무역수지 흑자축소를 위한 구체적인 수치목표를 정하라고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치목표의 설정은 비교우위에 의한 자유무역원칙에는 반하는 것으로 국제적 원칙인 UR협정하에서는 일본에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UR협정과는 별도의 소위 미국의 국내법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번 슈퍼 301조 부활은 그동안 알려진바와 같이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대일 무역역조 개선은 백약이 무효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심지어 미국 의회의 모상의원은 『일본에 대미 무역수지 개선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그랜드캐넌 계곡에 장미꽃을 던져 산울림을 고대하는 것과 같다』고 분노를 나타내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이번 미국의 조치가 반드시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속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중국·한국·동남아시아 등 최근 성장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으면서 미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란 원성을 받고 있는 아시아지역에 대한 경고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일부에서는 자동차 등에 대한 시장개방압력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에도 곧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가 있다.
그러나 슈퍼 301조 발동여부는 3월말 나라별 무역장벽보고서(NTE)가 발표되어야 가늠할 수 있는 문제로 현 단계에서는 불투명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를 전혀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해 우리 스스로 통상현안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압력을 자초해서도 안된다.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우리의 약속을 지키고 우리의 노력을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가 기왕 개방일정을 제시한 금융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그 일정대로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고,미국의 지적재산권 침해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사전에 마찰의 불씨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미국의 통상정책이 다양한 이해집단의 요구가 결합되어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해 대화채널을 다양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 헌법상 통상정책의 결정은 의회가 있기 때문에 행정부 중심의 일방적 접근에만 매달리기보다 의회와 언론에 대해서도 특별한 대화채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기업대로 모든 불안이 기업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업체간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협상채널을 다양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제간 분쟁은 다자간 규범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특정국의 일방적인 법규에 의한 분쟁해결노력은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하며 세계무역의 장래에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도 슈퍼 301조의 운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임은 물론 일본도 다른 나라의 자국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깊이 인식하고 가시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수치목표의 설정 등 미국의 요구를 사전에 협상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슈퍼 301조와 같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압력에 결국 굴복하여 국제적 의무를 수행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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