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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볼⑮ 백발 감독 김호의 보랏빛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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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현역 시절 김호(左)와 대전 감독 취임식 때의 김호.

2000년 3월 일본 영화 '철도원'이 국내 상영됐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다카구라 겐)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생김새와 분위기는 물론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길만을 가는 외고집 인생 역정까지. 그는 김호 감독(당시 수원 삼성)이었다. 그래서 당시 영화와 김 감독을 엮어 기사를 썼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는 한국 축구라는 열차를 향해 오랫동안 꼿꼿하게 서서 깃발을 흔들 철도원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오랜만에 김 감독과 저녁을 함께했다. 4년의 야인 생활은 반백(半白)의 그를 호호백발 영감님으로 만들었다. 주위에서 "염색 좀 하시라"고 권하지만 그는 "됐소"하며 허허 웃을 뿐이다.

김 감독은 지난달 대전 시티즌에 취임하면서 "동래고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할 때처럼 설렌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대전을 맡아 '시민구단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꿈을 꾼다. 대전의 상징색과 같은 '보랏빛 꿈'이다. 일본의 알비렉스 니가타처럼 경기마다 4만 관중이 꽉 차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내 팀'을 자랑스러워하는 구단.

그는 "공격 축구.벌떼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천하의 지략가가 80년대에나 통했을 '벌떼 축구'라니? 설명을 끝까지 들어보자. "우리는 스타도 없고 비싼 외국 선수 사올 형편도 못 된다. 대신 전 선수가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효율적인 공간 창출을 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한테는 11명이 15명으로 보이게 된다."

무식하게 많이 뛰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 공이 가는 길목을 선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패스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이름 '고종수'. 김 감독은 애제자가 재활에 실패했던 원인도 꿰고 있었다. "종수는 지구력 훈련을 꾸준히 했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스피드 훈련에 매달렸거든."

고종수는 현재 홈경기에서만 20분 정도씩 뛰면서 감각을 찾아가고 있다.

수원에서 키워낸 '김호의 아이들'은 어떤가. 상당수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A선수는 경기 전에 라커룸을 찾아 인사를 올렸고, B선수는 농담처럼 "불러주시면 가야죠"라고 했다. 김 감독도 "OO이는 꼭 데려오고 싶은데"라고 말했지만, 문제는 돈이다.

김 감독은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다. 시민구단이 생존하려면 유소년 선수를 육성해야 하는데 현행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드래프트를 부활하면서 '18세 이하는 프로 경기에 뛸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는 "시민구단은 죽으라는 얘기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선수를 중.고교 시스템에 매어놓는 것은 한국 축구 발전에도 큰 저해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17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고교생 대표팀'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그가 한마디 던졌다. "정형, 내 김호요. 김호 아직 안 죽었소."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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