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개방 부분도입 “청신호”/북한은 왜 신의주 개방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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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체제보호·경제난 타개 동시 겨냥/두만강 개발보다 단기성과 클듯
신의주 개방은 북한이 동해쪽의 나진·선봉에 이어 서해쪽의 개방에도 착수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해쪽의 두만강 경제권 개발계획이 유엔개발계획(UNDP)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는 하나 투자전망 등이 아직 요원한 앞날의 계획인데 비해 신의주 개발계획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의 서해경제권개발과 연계되도록 되어있다는 점에서 그 구체적 성과가 곧 나타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특히 이 지역 개방은 중국의 개방정책과의 연결속에서 모색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중국식 개방정책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신호로 보여 관심을 끈다.
신의주 개발 소문은 사실 지난해부터 나돌았다. 신의주의 중국측 대안인 단동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었다. 그러나 그 진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던 것인데 최근 북한이 이 제2의 개방계획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중국과의 협의가 구체화되자 그 실상이 차츰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소문
북한은 지난 91년 12월28일 정무원 결정 제74호로 선봉·나진지역을 개방했고,청진이 이 지역에 포함되어 동해안의 3개 항구는 이미 열어두고 있다. 제2단계로 신의주·남포가 개방되면 서해안의 남북에 걸쳐 2개 항구가 개방되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 해안의 양면에 고루 개방지역이 설치된다.
그럼에도 북한의 개방이 체감되지 못했던 것은 교착상태인 북한핵 문제와 당초 두만강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선봉·나진이 등장했으나 다국간 이해관계에 얽혀 이렇다할 진전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북한은 그동안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방식의 개방에 대해 상당히 경계심을 표시해왔었고 최근 북한핵 문제로 인한 양국간의 관계가 미묘했음을 생각할 때 북한이 중국과의 연계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서해안 개방을 단행할지 여부는 속단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동구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라는 정세변화속에 나름대로의 진로설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 소개 시작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개방에 따른 충격으로부터 체제를 보호하고 동시에 경제적인 출구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국지폐쇄형 개방책」을 만들었다고 하겠다.
이 방식은 이미 나진·선봉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실시된바 있는데 개방지역과 주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고 개방지역의 성분불량 주민이나 개방지역 주변 주민들을 이주시킴으로써 개방구의 바람이 다른 지역으로 번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은 나진·선봉 주변지역 주민을 이주시키거나 교체한바 있는데 신의주에서도 북신의주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있다고 한다.
관심의 초점은 핵문제가 외부적으로 험상궂은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이같은 개방정책을 내부적으로 수립하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이 핵대결정책을 취하고는 있지만 결국은 경제교류를 축으로 하는 평화적 공존 노선밖에 달리 선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선봉·나진 개방이나 중­북한 국경무역 5개 도시 개설 따위도 따지고 보면 제2단계의 신의주·남포개방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신위주는 한국의 부산에 상당하는 국경도시로서 중국의 단동·동구 등 경제특구와 경쟁관계를 가지고 한편 개방의 상승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 신의주 자체가 풍부한 수력(수풍발전소)·용수·철도·해운과 하운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 형제국에 예외적으로 공급하는 원유 파이프가 대경유전에서 신의주 앞의 압록강 바닥을 지나 박천 석유정제공장으로 연결된다. 신의주의 화학섬유공업과 함께 이 지역공업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중국쪽으로는 세계적인 비철금속 산지로서 붕사·마그네슘·활석·흑연이 개발을 고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상사가 이를 한국에 재수출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와함께 단동에는 홍콩·상해·북경으로 직결되는 국제공항이 있고,4만t급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동구항과 동반하여 발전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기반시설 수준급
단동은 과거 안동인데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한반도 침공 루트로서 당시에 사용됐던 군용 공항과 철도·교량·도로가 이번에는 북한의 개방과 경제교류의 통로역을 하게 되어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셈이기도 하다.
중국측은 심양이 중추인 동북 3성,단동·대연·동구와 신의주를 연계하면 황해권 경제발전은 물론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유도해내면서 한국과 함께 지역경제를 긴밀히 해한반도 안정구조가 구축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추가개방을 현 단계에서 낙관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현실노선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조짐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이며 신의주 개방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북경=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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