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홍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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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쌀개방 「절대불가론」을 외치다가 슬그머니 「불가피론」으로 고삐를 틀어가는 진짜 불가피한 사연을 이해하면서도 우화 한토막이 생각난다. 사냥꾼이 되겠다고 결심한 한 사나이가 총을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갔으나 사냥은 커녕 새 한마리도 못잡았다.
이 사내는 진짜 사냥꾼을 찾아가 자기가 겨냥도 하기전에 새가 날아가 버린다고 푸념을 했다. 그러자 그 사냥꾼은 사내에게 종이에 새 한마리를 그려주며 이것을 나무에 붙여놓고 총을 쏘라고 했다. 그러나 며칠후 이 사내는 다시 사냥꾼을 찾아와 새그림이 너무 작아 맞힐 수가 없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사냥꾼은 크고 흰종이를 사내에게 주며 이 종이를 나무에 붙여놓고 총을 쏘아 맞는 자리에 새를 그려 넣으라고 했다. 중국의 현역 시인 아이칭(애청)이 쓴 우화다.
순수하게 생각해서 쌀개방 절대불가가 정부 우루과이라운드(UR) 대책의 진짜 목표였다면 냉엄한 국제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새가 날아가 버릴 것을 예상치도 못하고 사냥을 장담한 꼴이다. 그래서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일찍이 예견하고 사전대비책을 강구하며 국민을 이해시킬 것을 진언했던 몇몇 선각자(?)들은 마치 매국노인양 매도당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불가피성을 빤히 내다보면서도 국내 농가에 미칠 충격과 국민여론에 인기가 없는 메뉴이기 때문에 일부러 절대불가만을 노래의 후렴처럼 되뇌고 있었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종이 위의 탄흔에 새그림을 그려넣는 요량과 다를 것이 없다.
최근 뒤늦게 정부 관계부처들이 여러가지 홍보책자를 만들어 농민들의 반발과 국민여론을 무마하는 작업에 나서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이들 홍보책자의 내용이 더욱 가관이다. 95년부터 UR 농산물협상이 발효되더라도 장기간의 유예기간과 관세의 부과로 우리 쌀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며 농민이 당장 농촌을 버리고 떠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우리 농업구조의 개선노력으로 쌀 생산기반이 붕괴될 우려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토록 UR의 영향이 미미하고 대비책이 완벽하다면 쌀개방의 절대불가론이 「직을 걸고」까지 강조됐던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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