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각>운포 김기창화백 개인전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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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八旬을 기념하는 雲甫 金基昶화백의 대규모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과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의 관람객수가 평일은 평균 5천명선,지난 일요일엔 1만여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관객동원에 성공을 거뒀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휘트니 미술전』 하루 관람객수가 평균 4천여명이었음을 상기해볼 때 대단 한 숫자다.
무엇이 이토록 관람객들을 매혹시키고 있을까.
우선 예술의 전당을 들어서면 1~3층을 가득 메운 1천2백여점의 작품에 압도되고 만다.세계 어느나라,어느 작가도 1천여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 또한번 놀라게 된다.인물.풍경.동물.화조.추상.구상.수묵.채색등 소재나 재료의 어느 영역에도 구애됨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유감없이 역량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빠른 속도의 강력한 필치와 터치,활달한 필선에 따른 생동감이 대담한 구도와 함께 보는이들을 神技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수련기의 엄격한 사실풍 세필화와 이번 전시회를준비하면서 처음 발견했다는 무수한 스케치들을 보면서 바로 이것들이 오늘날 그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낸 튼튼한 기초였음을 알게 됐다. 해방후 스승인 以堂 金殷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필력의 세계로 접어들면서 새롭게 일군 추상 문자화라든가,면분할의 입체적 구성세계는 동양화의 지평을 확장시킨 작품들이다.
예수의 일대기를 조선시대 의상을 걸친 조선인으로 바꿔 그린 기지,시선으로도 따라가기가 힘든 속필의 『군상』시리즈,태고의 신비스런 색채와 자연스런 구성으로 정화된 정신세계를 담아낸 순수추상등 곳곳에서 그의 높은 예술성을 만나게 된다 .
나는 雲甫의 바보산수를 그의 예술의 마지막 결정체라 부르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움켜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낸뒤 해탈한 정신세계에서 건져올린 그의 철학과 해학이 담긴 바보산수.후학들에게 늘 들려주던「心象의 세계」가 바로 그 그림속에 있다.
특히 후학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은 팔순에 이르러서도 지칠줄 모르고 용솟음치는 그의 뜨거운 창작열이다.스물다섯점의 근작들이 걸린 갤러리현대 전시장에는 팔순 노대가의 정열이 담긴「八十翁」서명의 신작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보산수.청록산수.악사의 모습.수렵도.추상화등붓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수묵으로 휘두른 1백호 크기의 걸작들을 보면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비할 데 없다.
더욱 간결해진 선이 동심으로 치닫는가 하면 어디선가 솟아난 격정적인 힘이 화면을 후리치며 또다시 악사들에게 노래를 부르게한다.거기엔 공기가 흐르고 목동의 피리소리,절간의 종소리가 산천에 은은히 울려 퍼진다.평생 못듣고 지내야했던 「소리」를 雲甫는 그림속에 가득 담아 보는 이의 마음에 메아리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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