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시장경제개혁 불만/파 총선 공산계 승리의 배경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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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5% 고실업률에 실질임금 저하/속도 늦추되 공산회귀는 불가능
동구 반공투쟁의 기수였던 폴란드 국민들이 19일 치러진 총선에서 구 공산계열인 민주좌파동맹(SLD)과 폴란드 농민당(PSL)을 제1,2당으로 선출해 유럽각국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유럽과 옛 소련 공산정권의 몰락을 불러일으켰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폴란드의 유권자들이 구 공산세력에 표를 던진 가장 큰 이유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에 따른 불안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폴란드 경제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 4%의 높은 성장률이 예상되고 인플레도 90년 5백85.5%에서 올해는 40% 수준으로 동유럽국가들중 가장 안정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여파로 15%에 달하는 고실업률,실질임금의 저하 등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여왔다. 급기야 유권자들은 불안한 성장이냐,안정이냐의 귀로에서 「안정」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시절 가게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망정 주머니는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옛날이 지금보다 나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더 안정돼 있었다』며 공산시절을 떠올리는 국민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번 총선으로 폴란드의 개혁속도는 늦춰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개혁이 중단되고 구 공산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 제1당으로 부상한 SLD의 지도자 알렉산드르 크바니에프스키는 『폴란드가 개혁을 필요로 하는 한 우리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시장경제 개혁으로부터의 급격한 선회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91년 총선에서 29개의 군소정당이 난립,혼란을 빚어왔던 폴란드는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도 25% 이상의 지지를 얻지못해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원내의석을 차지하는데 필요한 5% 이상의 지지를 얻은 정당은 SLD·PSL을 비롯,한나 수호츠카 현 총리가 이끄는 민주동맹(UD),가톨릭 노동동맹,독립 폴란드연합,개혁을 위한 초당파 연합(BBWR) 등이다. 이에따라 SLD를 주축으로 하는 연정이 불가피하다. 구 공산계열 정당들은 이미 연정구성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현재로서는 SLD와 PSL의 연립내각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이 경우 폴란드는 프랑스의 좌우동거와 유사한 정치체제를 갖게되고 우파레흐 바웬사 대통령은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다.
바웬사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7월 결성했던 BBWR이 이번 선거에서 가까스로 5% 정도의 지지를 얻긴했지만 대패해 95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재선에 큰 부담을 안게됐다.<한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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