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국세청의 실명제 보완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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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제중심에서 금융활성화로/「운용의 묘」 살린다/자금시장 이상기류 우선적 대처/기본틀 유지하며 국민불안 해소
금융실명제의 운용방식이 바뀌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단의 팀장이 교체된데 이어 홍재형 재무부장관이 31일 추경석 국세청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보완대책을 발표한 것은 그동안 경직되게 운용돼온 실명제에 「운용의 묘」를 살리겠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정부가 실시단의 단장을 김용진 세제실장에서 이환균 제1차관보,부단장을 김진표 세제심의관에서 정덕구 저축심의관으로 각각 바꾼 것도 세제실보다 금융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실명제 실시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을 해나가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변화에 적극대응
김 실장 등은 실명제의 「주역」으로서 실시단을 맡아 왔으나 실시초기와는 달리 재무부의 금융관계자들이 준비팀 못지않게 긴급명령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세제실보다는 이재·증권국 등 금융부서에서 할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고려됐다. 더구나 김 실장 등은 93년도 세제개편안의 국회제출 업무까지 겹쳐 물리적으로 실명제를 챙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부에서는 실명제의 시행과정에서 터져나오는 금융시장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세제실팀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나 단장의 교체를 「문책성」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실명제를 비밀리에 준비해온 세제실의 역할이 끝나가고 있고 정부 스스로 실명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변화를 감안해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적절할 듯싶다.
특히 세무조사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실명제의 조기정착을 위해서는 자금출처조사 등 불안감을 해소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홍 장관은 기자회견에서도 『실명전환자료가 통보되면 국세청이 예외없이 자금출처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탈세의 혐의가 명백한 경우에만 조사를 하게된다』고 밝혀 정부가 불안감 해소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나타냈다. 그동안 실명제 실시과정을 보면 실명전환 기간중 3천만원을 넘게 인출할 경우 국세청에 명단을 통보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일단 대량인출사태에 따른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는데는 성공했으나 거꾸로 돈의 흐름을 막아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돈흐름막아 혼란
또 실명제 실시이후 증권시장이 당초 예상보다 안정돼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금이 1조3천억여원이나 풀려나가는 등 자금시장의 이상기류가 좀처럼 가시지않고 있다.
특히 9월말 추석 자금 성수기와 실명전환기간이 끝나는 10월12일을 전후한 금융대난설이 나돌고 있으며 이외에도 연말의 자금성수기와 제2단계 금리자유화 등 일정이 맞물려 있어 금융시장의 변화에 기민한 대응책마련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 단장은 이와관련,『경제운용 전반을 감안해 실명제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앞으로 실명제가 경제성장률과 물가 등 거시경제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서 대책을 마련할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팀장의 교체와 홍 장관의 회견을 계기로 앞으로 실명제의 골격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홍 장관 등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금융실명제 실시 보완대책」을 보더라도 국민들의 세무조사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밖에 증권·채권시장 활성화방안 등 금융분야에 대한 보완대책이 포함돼 있으나 긴급명령에 나타난 실명제의 기본틀을 흔드는 조치는 발견되지 않는다. 홍 장관은 기자회견 석상에서도 『금융실명제의 기본원칙을 지켜나가면서 상거래 등 경제활동 위축을 야기하는 불안심리를 없앨 수 있도록 보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심리안정에 도움
요컨대 금융시장의 보완대책을 마련하되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음성자금을 양성화하기 위해 무기명 장기 저리채권을 발행하는 등 실명제의 후퇴로 비쳐지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실명제 실시단의 팀장이 세제전문가에서 금융전문가로 바뀌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무조사에 대한 불안감 해소에 나섬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꾀하는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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