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의제선정 기준은 선택과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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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다는 상징성이 중요했던 2000년의 김대중.김정일 회담과는 달리 실무적인 성격의 노.김 회담에서는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 남북한의 모든 현안을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바람직하다. 어떤 문제를 선택해서 집중할 것인가. 크게 평화와 경제협력이다. 평화에는 핵과 주한미군과 군비통제가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핵이 출발점이다. 경제협력은 그것 자체로서도 존재가치가 충분하지만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도 하다. 경제협력은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구축과 경공업 발전 지원을 축으로 하되 한국의 납세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문제는 북핵이다. 핵은 남북한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이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다. 북한은 6자회담도 북.미 협상의 무대로 생각한다. 거기다 미국은 노.김 회담이 6자회담의 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한다면 미국이나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불만스러워 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핵문제를 해결하지도 못 하면서 6자회담을 흔들어 북한에 핵폐기를 지연할 구실만 주는 결과가 된다면 그 책임은 한국이 떠안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핵포기의 약속을 받아내라는 국내 여론의 압력, 6자회담이 흔들릴 것을 경계하는 미국과 일본의 시선, 핵문제라는 염불보다는 경제협력이라는 잿밥에 집착하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처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주목된다. 노.김 회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빠진 곤경을 보고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남의 불행이 기쁜 쌤통심리)를 즐길지 모르지만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실패하면 그 부담은 모두 우리들 것으로 돌아온다.

정부의 주장대로 2000년 김.김 회담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절 뒷거래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더구나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의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노 대통령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4억5000만 달러 뒷거래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경제지원의 신통력을 믿을지 몰라도 김 위원장에게는 경제발전도 체제보장이 있은 다음의 이야기다.

이산가족,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1)서해 북방한계선(NLL) 다시 긋기 (2)한.미 군사훈련 중지 (3)국가보안법 폐지 (4)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 방문이라는 4대 긴급과제도 쉽게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다. 핵문제가 없던 시절에 평양에 갔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하면 노 대통령의 처지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난적(難敵)과의 대결을 즐기는 노 대통령 아니던가. 핵을 포함한 평화와 경제협력을 주요 의제로 선택하고 그가 자신 있어 하는 말솜씨를 발휘해서 김정일의 핵포기 발언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남북 정상회담이 6자회담에서의 비핵화 프로세스의 장애물이 아니라 보완작용이 된다. 핵에서 받는 것 없이 경제에서 주는 데만 합의한다면 여론의 저항이 그를 기다릴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4억5000만 달러 뒷거래=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은밀히 지원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뒷거래설이 무성했으며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 결과 실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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