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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물줄기 어디로 가나/최근 곳곳서 보완필요성 대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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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정 치우치면 경제에 부담인식/기업투자 유도할 융통성 보일듯
「개혁,지금부터 본격화.」
민자당 기관지 민주자유보 6월28일자는 당 총재인 김영삼대통령 특별회견 기사(1면 머리)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그러나 이 제목은 같은 회견기사의 「권력개혁에서 생활개혁으로 전환」이란 제목이 사흘만에 둔갑된 것이다. 민자당은 당초 6월25일자에 이같은 제목의 회견기사를 실었다가 김 대통령이 진노하는 바람에 50만부를 폐기하고 다시 찍은 것이다.
○당보폐기 해프닝
이같은 해프닝은 민자당 관계자들의 단순한 판단착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취임후 1백여일동안 쾌속 항진하던 YS개혁이 겪고있는 진통을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정무비서실이 작성해 민자당에 넘긴 서면답변이 25일 방송을 통해 보도되자 자신의 뜻이 곡해됐다며 정정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즉 개혁이 완화된 것처럼 비치는 것은 잘못이며 「개혁은 지금부터」라는 것이 자신의 진의라는 것이다. 이경재 청와대 대변인은 이 소동이 보수회귀를 바라는 일부 정치권의 사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관련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의 개혁의지는 여일하며 개혁이 아래로,생활쪽으로 확산되는 것은 개혁을 「보완」하는 것이 지 결코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김 대통령이 개혁에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 「보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측근 참모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김 대통령은 자신이 개혁작업에 한치의 틈이라도 보이면 반개혁세력에 의해 개혁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혁의 원칙에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을 생각이다.
동시에 김 대통령과 참모들은 반개혁세력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집권 민자당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순간 방심하고 이들로부터 되치기 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최근 김 대통령의 언행을 면밀히 지켜보면 그의 국정운용 기조가 살벌한 개혁 일변도만은 아님을 차츰 발견하게 된다. 소위 국면전환의 꿈틀거림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장애를 하나씩 인식해가며 타협적(?) 해결책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도 하락징후
첫째,아무리 개혁이 절실한 과제일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경제회생,그리고 여기에 필수적인 기업인과 관료조직의 호응이 기대와는 다른데 고민하고 있다. 최근 김명윤낙선·현대 노사분규·한­약 갈등 등을 겪으면서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음이 여러곳에서 잡히고 있다.
특히 경제회생의 부진은 그를 괴롭히며 조바심 내게 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돈을 안받으면 개혁과 경제회생은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고 장담해 왔지만 강력한 사정이 경제회생의 악재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음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사정은 개혁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이며 본격적인 개혁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할뿐』이라고 역설하지만 막상 듣고 따라줘야 할 기업인이나 공직자들은 개혁의 「잡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직자와 여당에서부터 『눈을 부라리며 「웃고 즐겁게 놀아보라」고 한들 흥이 나겠느냐』는 빈정거림이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은 요즘 몇달전 한 기업인이 『돈버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한 말을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 6월30일 끝난 신경제 1백일의 「성과없는 경기부양」이 기업인을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새로이 인식하는 것 같다. 즉 금리·인하·임금억제·규제완화 등 갖가지 지원시책에도 불구,기업의 신규투자·실업률·물가·경제성장률 어느 하나 탐탁하지 못한 것은 결국 기업의 얼어붙은 투자마인드 때문이라는 점이다.
김 대통령이 신경제 5개년계획을 발표하는 2일 저녁 30대 재벌그룹 총수들은 청와대로 초치,적극적인 투자와 신경제계획에의 동참을 당부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기업인을 안만나고,돈안받고,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는 통치관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경제전도사」인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대기업 사정계획 없다」는 메시지를 이미 전달해 놓은바 있다.
○“후퇴는 아니다”
그렇다고 김 대통령이 5,6공식의 대통령직 수행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는 것이 청와대의 공통된 시각이다. YS정부는 오히려 여러 채널을 동원해 대기업의 경영상태·소유,오너 개개인의 지분·성향·비위 등에 대한 갖가지 자료를 열심히 확보하고 있다. 『당신네들에게 한푼의 돈도 요구하지 않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지만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하지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청와대 경제팀이 『기업은 사정대상이 아니다』고 했음에도 기업인까지 예외는 아니다. 드러나는 비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현실적응 노력이 개혁의 「후퇴」로 비치는데는 거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혼자만의 노력은 무리라는 지적에도 불구,김 대통령 중심의 「인치」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 어느정도 융통성을 갖겠다는 생각만은 있는듯 하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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